'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어떻게 DC를 구원했나?

이현수 승인 2022.04.29 17:30 | 최종 수정 2022.05.03 16:37 의견 0

오늘 이야기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The Suicide Squad’ (2021, 제임스 건 James Gunn, 2시간 12분)입니다. 정관사 ‘The’가 안 붙은 그냥 ‘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데이빗 에이어 David Ayer, 2시간 3분)와 헛갈리지 마세요. 아, 제목만 같은 영화구나! 아니요. 둘 다 동일한 DC 코믹스 원작 영화이고 두 영화 모두에서 할리 퀸 Harley Quinn 역을 마고 로비 Margot Robbie가 연기합니다. 아, 그럼 속편이구나! 아니요, 2021년 작은 2016년 작의 속편이 (시퀄도 프리퀄도) 아닙니다. 오, 그럼 리부트구나! 아니요, 2021년 작의 주인공을 2016년 작에서 윌 스미스 Will Smith가 연기한 데드샷 Deadshot으로 하려다가 윌 스미스의 데드샷 캐릭터 복귀를 염두에 두기 위해 남자 주연 배우 이드리스 엘바 Idris Elba는 데드샷이랑 겹치는 부분이 많은 비슷한 캐릭터 블러드스포트 Bloodsport를 연기합니다. 아니 그럼 속편도 아니고 리부트도 아니면 도대체 뭔데? 글쎄요, DC 코믹스가 늘 그렇죠 뭐. 절반은 리부트고 절반은 속편이고. 아, 이 영화의 절반은 DCEU DC Extended Universe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나머지 1/4은 오리지널이고 나머지 1/4은 이전 영화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다음에 나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정사로 편입시키고 폭망하면 시침 뚝 떼고 또 정관사만 빼고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서 절반은 DCEU에 편입시키고 나머지 1/4은 ... 집어치워 이 미친 인간들아! 여하튼 리부트에 리부트에 또 리부트를 거듭하던 DC 코믹스의 역사마냥 워너 Waner Bros.와 DC 코믹스가 같이 써내려가는 DC 코믹스 영상물들도 서로 족보가 꼬이고 꼬여서 그걸 따지는 건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평행우주에 평행우주에 또 평행우주를 만들던 마블 코믹스 Marvel Comics가 영상화 파트너 디즈니 Disney와 함께 하나의 유니버스를 만들다 힘에 겨워 낑낑거리다 결국 평행우주를 열어제껴 버린 것을 보자니 원작 코믹스들의 숙명을 영상물들이 그대로 이어받는 모습이 재미있다고나 할까 숙연해진다고나 할까 ... 여하튼 워너는 DC 영상물들을 하나의 유니버스 하에 묶기를 거부하고 한 작품 한 작품이 개성 있고 완성도 있는 영화가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조커 Joker’ (2019, 토드 필립스 Todd Phillips, 2시간 2분)나 오늘 얘기할 ‘수어사이드 스쿼드’, ‘더 배트맨 The Batman’ (2022, 맷 리브스 Matt Reeves, 2시간 56분), HBO MAX 시리즈 ‘피스메이커 (2022, 제임스 건 외, 1시즌 8에피소드) 등을 보고 있자니 워너의 말이 맞는 거라고 수긍이 가기는 한다. 영화와 TV 시리즈들이 쌓이고 쌓여 그 무게를 주체 못하고 휘청거리는 디즈니-마블 진영을 보고있자면 소위 인피니트 사가 Infinite Saga라고 불리던 그 수많은 영화들 이후 ’이 영화 주인공과 저 TV 시리즈 주인공과 이 영화 조연과 저 영화 엑스트라가 사실은 다 같은 세계의 사람이야‘가 뭐 그리 대단하고 작품의 퀄리티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여하튼 본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들어가보자.

1. 영리한 이야기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DC 빌런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을 잡는 이야기이다. 히어로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 Justice League의 반대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처음 만들어진 1959년에야 나쁜 놈 잡는 나쁜 놈 이야기가 신선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2022년이다. 애초에 착한 놈도 나쁜 놈도 모두 사라진 시대란 말이다.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망한 것은 이 캐캐묵은 이야기를 너무 캐캐묵게 이야기해서이다. 악당들도 다 사연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고대의 강한 악을 물리치려면 정의와 악 모두가 힘을 합쳐 물리쳐야한다. 지구에서 꺼져 이 사악한 존재야. 내가 비록 빌런이지만 지구 빌런이야!

‘Batman & Captain America (Elseworlds)’ (1997, 존 번 John Byrne)
‘Batman & Captain America (Elseworlds)’ (1997, 존 번 John Byrne)

2022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2016년 작이 행했던 이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다. 악은 처음부터 나타나있지 않고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그저 비즈니스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이 나타나고, 그 뒤에 숨은 추악하고 음습한 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표면상으로 드러나 있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목표물 스타로 Starro. 그러나 이 압도적인 우주 생명체도 사실 피해자일 뿐이다. 그 뒤에는 미친 독재 정권이 있고 그리고 그 뒤에는 미국이 있었다. 자신이 살던 보금자리에서 지구인 (정확히는 미국인)에게 끌려와 감금 당한 뒤 무기로 개조당하다가 탈출해서 자신의 생존 법칙에 따라 행동하다가 ‘우주에서 별을 보는 것이 좋았다 ...’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쓰러지는 스타로. 영화는 이 괴물을 그야말로 괴물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스타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2. 이중성

그렇다. 이 이야기는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자신들이 처치해야할 타겟 이면에 숨은 추악한 진실을 보고 임무를 저버리고 옳은 일을 하고자 한다. 할리 퀸은 자신을 사랑한다던 남자가 독재자이건 아니건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미친 싸이코패스라는 걸 알게 되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블러드스포트는 민간인을 대량학살하고도 그걸 그냥 묻어버리려는 미국 정보기관의 모습에 혐오를 느끼며 임무를 포기하고 옳은 일(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이중성은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심지어 이 영화는 페이크 오프닝과 페이크 주인공들을 내세우는 이중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시작한다. ‘영화를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된다.’라는 가장 좋은 예시로 작법 책에 실려도 될 만한 미친 오프닝이지만, 그것이 영화의 서사에 큰 도움을 주면서 그 오프닝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이 이중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극의 내외를 넘나들며 드러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이야기하는 어느 기사의 제목. 이 영화의 첫 인상은 미친 캐릭터들이 나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미친 영화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케팅 역시 이 영화를 딱 저 포지션이 위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듯 보인다. 트레일러 역시 저런 톤 앤 매너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럼 영화 본편은 어떤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최근 나온 영화들 중 가장 진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리어스한 영화이다. 유머러스하고 캐릭터들이 심할 정도로 개성있고 웃기나 캐릭터 하나하나가 엄청난 깊이를 가지고 있고 영화는 그들 하나하나를 애정을 다해 소개해주고 그들의 속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된 살인청부업자 데드샷. 그러나 딸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좋은 아빠이고 가족을 너무너무 사랑하기에 가족이 인질로 잡히자 ‘쳇 어쩔 수 없군’ 하며 자살 특공대에 참여한다.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더이다.

킬러가 되는 거 말고는 다른 삶을 생각도 할 수 없게 길러진 블러드스포트. 역시 가족이 인질로 잡히자 자살 특공대에 참여한다. 2021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더이다. 가족이 인질로 잡혔는데 죽으라고 그냥 놔둘 인간이 어디 있는가? 2006년 데드샷마냥 이 상황을 ‘쳇, 어쩔 수 없군!’이라고 할 필요가 있나? 당연한 것인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그 유명한 면회 장면. 만일 협조 안 하면 애플 워치를 훔치다 걸린 딸을 감옥에 보낼 거라며 가족이 인질로 잡혔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씨발, 고작 시계따위나 훔치다가 걸리다니!’라고 핀트가 어긋난 분노를 내뱉는 블러드스포트, ‘씨발, 그냥 시계가 아니라 스마트워치라고!’ 이후 딸과 아버지는 서로서로 다정하게 ‘Fuck You!’ ‘Fuck You!’를 외쳐댄다.

결론을 살펴보자. 2006년 데드샷은 딸을 너무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트를 뿜뿜 뿜어내는 몇 개의 장면을 할애 받으면서 사랑꾼 장면을 연출한다. 2021년 블러드스포트는 그냥 옳은 일을 하고 그게 몇 다리 건너 딸에게 영향을 준다. 블러드스포트는 자신을 괴물로 키운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하나 자식과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또 다른 괴물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쁜 아버지이고 올바르지 못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와 다른 점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고,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좋은 인간이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가 움직이자 그를 둘러싼 세상이 움직이고 그 세상 저 끄트머리에 있는 그의 가족들도 그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2016년 데드샷이 TV에 나와서 말끝마다 아이들은 너무 사랑스러워요, 아이들은 제 모든 것이죠 라고 대사를 외치는 TV 육아프로그램 속 아버지라면, 2021년 블러드스포트는 서툴고 엉성하지만 자식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현실 속 아버지이다. 어느 쪽이 더 현대 영화 속 인물로 적합할지는 보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 이중성은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가장 뛰어난 장치로 사용되며 블러드스포트, 피스메이커, 할리퀸, 킹샤크, 폴카도트맨, 랫캐쳐라는, 처음에는 미친놈들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우리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같은 인물인지,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캐릭터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다음 시간에는 이 영화가 주제와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형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특히 샷-리버스 샷을 대체하는 카메라 이동과 트래킹의 효과적인 사용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레트로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순 레트로 유행을 쫓는 영화들과 어떻게 차별되는지, 그리고 제임스 건 전체 필모를 관통하는 나쁜 부모-착한 부모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야기는 스핀 오프 시리즈 ‘피스메이커’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미지 출처=‘The Suicide Squad’ (Warner Bros. , DC Entertainment), ‘Suicide Squad’ (Atlas Entertainment, DC Entertainment), ‘Batman & Captain America (Elseworlds)’ (DC Comics), ‘(무비게이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대로 미쳤거나 완뵥하게 돌았거나’ (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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