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47편] 뤄창에서 시닝으로

백민섭 승인 2022.01.13 13:16 | 최종 수정 2022.01.13 13:26 의견 0

뤄창(若羌, 또는 차르클릭)은 인구 약 6만 명의 작은 현(縣)이다.

타클라마칸 동남부 길의 사실상 끝이며 서역 36국 가운데 러우란(楼兰)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적으로는 사막을 넘어 둔황으로 이어지고, 아얼진산(阿爾金山)을 넘으면 티베트 사람들의 땅 칭하이성(靑海省) 거얼무(格爾木)로 연결된다.

타클라마칸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교통의 요지이다.

서역남로의 다른 도시들처럼 뤄창도 개발의 바람이 거세다.

뤄창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나 중동으로 진출하는 고대 실크로드의 거점이었다.

2006년 뤄창 ⇔ 민펑 구간 570킬로미터의 315번 국도가 연결되면서 석유, 천연가스 개발과 난장 지역 경제발전이 가속화됐다.

2018년12월에는 허뤄(和若, 호탄⇔뤄창)철도가 착공되었다. 신장 남부 호탄(和田)과 뤄창(若羌) 사이 825킬로미터를 잇는 철도공사는 앞으로 약 3년 후면 완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민펑, 치에모 등 서역남로 선상에 있는 오아시스도시가 쿠얼러와 거얼무를 연결하는 노선과 연결되어 그야말로 일대 전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

실크로드 길목 뤄창이 21세기에 들어 오일로드(Oil road)로 거듭나고 있다.

뤄창은 중국 정부가 주창(主唱)하는 일대일로(一带一路)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공항과 철로건설이 한창이고, 도심 외곽에서는 10만 명을 수용하는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현재 인구가 3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상전벽해 (桑田碧海)다.

2012년 뤄창에서 대규모의 니켈, 구리, 코발트 등의 매장량이 확인되면서 뤄창의 개발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는 뤄창현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이다. 그동안 ‘러우란의 미녀’ 등으로 유명한 러우란(樓蘭)현에 밀려 뤄창과 민펑 사이에 신(新)러우란시를 건설하여 러우란으로 합병하려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있었다. 뤄창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일이었지만 이제는 도시 이름을 빼앗기지 않아도 될 만큼 일신우일신하고 있다.

'러우란의 미녀((樓蘭美女)'를 상징화 한 러우란박물관 외벽
'러우란의 미녀((樓蘭美女)'를 상징화 한 러우란박물관 외벽

뤄창에는 러우란박물관이 유명하다. 바로 ‘러우란의 미녀’라는 미라 때문이다.

1980년 4월 위구르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팀이 로프노르를 탐사하다가 옛 러우란왕국의 철판하(鐵板河) 삼각주의 모래 속에서 3,8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를 발견한다. 전설 속의 고대왕국 러우란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미라는 발굴 당시 머리칼과 눈썹이 선명하고 화려한 옷과 장식물로 치장한 여인이었다. 고고학자들은 큰 눈을 가진 금발 미녀가 생전에 건장하고 풍만했으며 용모가 단정한 페르시아계 유목민(Saka족-Scythai족을 말함) 출신의 중년의 부인이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래서 일명 ‘죽은 모나리자’, 또는 ‘러우란의 미녀((樓蘭美女)’ 라고 부른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도시국가로 번성하다가 7세기경 돌연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비운의 전설 '러우누란왕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끝에 위치한 로프노르(Lop Nor, 羅布泊)호수 근처 서역 36개국 가운데 작은 나라였다.

원래 러우란 사람들은 로프노르호수에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으며 실크로드를 지나는 대상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살았다. 톈산북로와 톈산남로가 갈라지는 천혜의 장소에 위치한 덕분에 자연스레 실크로드의 보급기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어느 날 호수가 마르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는 모래바람 속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호기심 많은 동서양의 많은 학자와 탐험대들이 미스터리한 호수의 실체를 알고자 찾아다녔다. 사라진 전설의 호수를 찾은 사람은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이었다. 20세기 초 그의 탐험대는, 모래폭풍으로 타리무강의 물길이 바뀌면서 로프노르호수가 150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위치와 크기가 변하는 이동하는 호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찌됐든 7세기경에 홀연히 사라진 왕국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세기말에 발견한 세기의 현장을 보고 싶었으나 끝내 갈 수 없었다.

주요 핵 실험장과 다수의 군사시설이 있는 보안구역이라는 이유로 답사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뤄창에서 화투거우 가는 길. 높은 산과 협곡으로 이 길은 말과 낙타도 버거워했을 터였다.

그 옛날에는 필경 죽음의 길이었으리라. 그 길을 향해 간다.

뤄창을 벗어나면 곧장 모래와 자갈, 잡초들이 뒤섞인 고비탄(Gobitan, 황무지)사막이다.

길고 험준한 아얼진산맥(阿尔金山脈)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해발고도 800m대의 뤄창에서 단숨에 해발1,800m로 올라서니 오랫동안 동행했던 쿤룬산맥이 멀어지고 금빛 지평선 타클라마칸사막이 보인다. 오지는 힘든 만큼 멋진 추억을 안겨준다.

도저히 빠져날 수 없을 것 같은 쿤룬산맥 협곡을 지나 아얼진산으로 직진한다.

대협곡을 세 개나 지나 아얼진산 고개를 넘자 티베트와는 또 다른 설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오지길 14,000여 킬로미터를 달려 온 차는 가르릉거리며 피로를 호소한다. 애써 차를 달래가며 해발고도 3,000미터를 올라서자 지난 몇 시간 동안 달려 온 협곡과 황무지와 산맥들이 일순 하나가 된다.

중국감독관도 현지가이드도 이 길은 난생처음이었다.

뤄창 ⇨ 망야(茫崖) ⇨ 화투거우(花土沟)⇨ 거얼무(格尔木, Golmud) ⇨ 시닝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이 사막과 산악이다. 그 사이에 숨어있는 모래사막, 황무지사막, 소금사막 등 사막버라이어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시작인 훙려거우(紅柳溝)협곡은 고비탄 길이지만 계곡으로 들어서면 가느다란 실개천에 초지도 볼 수 있다.

몽골어로 '측백나무가 있는 산'이라는 뜻인 아얼진산맥(阿爾金山脈-쿤룬산맥의 일부)은 신장위구르의 타리무분지와 칭하이성의 차이다무(柴達木)분지 사이에서 동북 방향으로 뻗은 산맥. 서쪽으로는 쿤룬산(崑崙山), 동쪽으로는 치롄산(祁連山)까지 맞물린 전장 700km, 폭 200km가량의 거대한 산줄기다.

아얼진산맥 고갯길
아얼진산맥 고갯길

산을 넘어 남쪽으로 나오자 사막지대가 펼쳐진다. 사막을 가로 지르는 도로 하나가 마치 뱀이 지나간 길처럼 여유롭게 휘어져 뻗어 나간다. 아, 또 사.막.이.다.

어쩌면 이런 길을 다니는 것도 낭만적인 추억이 될지 모른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쿠얼러(庫爾勒)에서 칭하이(靑海)성의 거얼무(格爾木)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 고생을 자초하지 않아도 된다. 낙후된 서부지역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둔화되고 있는 지역 경제성장도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오래전 유명무실하게 된 서역남로를 비롯한 실크로드가 새롭게 복원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올라올 때 만큼이나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가자 드디어 칭하이다.

동쪽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칭하이성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다.

뤄창에서 315번 국도를 타고 약 290km 가면 칭하이성으로 넘어가는 신장의 마지막 마을인

이툰부라커(Yitunbulake, 依吞布拉克)를 지나 이내 망야(茫崖)에 이른다.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칭하이성 접경 지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이다. 영화처럼 먼지 날리는 마을의 황량함 그 자체로 존재의미가 있다.

아얼진산맥과 315번 국도
아얼진산맥과 315번 국도

아얼진산맥을 넘으면 화투거우(花土溝)에 가까워진다. 도로 옆에는 새로 굴착 준비에 바쁜 채굴현장들이 눈에 띄고 여기저기 제멋대로 자리한 시추기가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이 황무지가 땀을 흘리는 만큼 도시가 커질 것이다.

이툰부라커에서 약 60km를 달린 끝에 도착한 유전도시 화투거우(花土溝). 오로지 유전개발 하나만을 위해 황량한 사막에 홀연히 생겨난 도시다. 불과 10여 전만해도 볼 것 하나 없는 마을이었다. 지금은 확연히 다르게 도시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편의시설도 없는 것이 없을 정도. 왕빠(网吧-PC방)도 있고 우체국, 은행도 있다. 미용실이며 목욕탕, 시장은 물론이고 7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거얼무(格爾木)를 연결하는 버스노선도 있다. 거침없는 화투거우(花土溝)의 발전상은 밤하늘에 빛나는 유전의 가스불빛처럼 화려하다.

초대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맞은 이른 아침 화투거우(花土溝)를 떠난다. 영하 16도의 차가운 공기는 스산한 화토구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다른 세상에 떨어진 듯 낯설다.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현실과 유리된 시공간은 일상의 궁금함을 유발한다.

화투거우에서 나와 315번 국도를 따라가자 이내 가씨쿨호수(尕斯库勒湖, Gasi Kule Lake)가 동행 한다. 사막에 지친 눈이 호강을 한다.

약 15km 쯤 가서 가씨향(尕斯乡, Gasixiang)마을에 이르자 제법 큰 농경지가 있다. 이 화성 같은 황토고원에서 논과 밭이라니. 인근에 있는 가씨쿨호수의 혜택일 것이다.

하이시몽골족티베트족자치주에 있는 고비탄사막지대
하이시몽골족티베트족자치주에 있는 고비탄사막지대

산맥을 내려와 오른쪽에 길게 뻗은 바옌카라산맥을 벗 삼는다. 하이시몽골족티베트족자치주(海西蒙古族藏族自治州)를 지나 시아오차이다무호수(小柴达木湖, Xiaochaidamu Lake) 근처, G3011고속도로(柳格高速)를 200 여 킬로미터 가면 거얼무(格爾木)다.

칭짱열차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오직 거얼무를 통해서만 라싸로 갈 수 있었다. 도시에 가까워지자 고속도로 좌우로 너른 녹지대가 나타나고 호수도 보인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귀환이다.

하루 쯤 쉬어가야 할 길이지만 집을 향한 마음이 조바심으로 가득하다. 거얼무를 지나 시닝(西寧)으로 내처 달리다가, 거얼무에서 시닝(西寧)으로 가는 길에 칭하이호수를 보려고 109번 국도로 갈아 탄다. 770㎞를 달려가야 한다. 도중, 볼리비아의 '우유니(Uyuni)'와 같은 소금사막 차카염호(茶卡盐湖)를 보고 싶었으나 일정상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국도 분기점에서 호수를 보고 되짚어 나올 시간이 여의치 않다. 언제 또 오려나하는 자조 섞인 마음이 긴 한숨으로 바뀐다.

칭하이호수 동부에서 치롄산(祁連山)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유채꽃 밭 멘위엔(門源)의 ‘백리화해(百里花海)’는 칭하이호수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시기도 아니어서 포기하고 서남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치롄산맥과 유채밭
치롄산맥과 유채밭

거얼무에서 사막과 산길을 번갈아가며 525km를 달린 끝에 샹피산(橡皮山, 3817m)고개에 이르자 거대한 칭하이호(靑海湖)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 칭하이성 동부에 있는 중국 최대의 염호(鹽湖)다. 옛 이름은 코코노르(Koko Nor)였다. 몽골어로 '푸른 호수'라는 뜻이다.

칭하이호수
칭하이호수
칭하이호수
칭하이호수

중국 최대의 내륙호이자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진 칭하이호수 기슭에는 코라를 도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엉켜있다.

산과 초원, 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답고 장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칭하이호수로서는 당연한 북적거림이다.

1월, 8-9월. 이 때면 호수 북쪽 기슭에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장관이다. 5-7월은 철새를

구경하는데 가장 좋은 때이고, 볕이 좋은 날 호수는 바다로 변한다.

칭하이호는 북쪽에 다퉁산(大通山), 동쪽에 르웨산(日月山), 남쪽에 칭하이난산(青海南山), 서쪽에 샹피산(橡皮山) 등 사방 4개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중앙에 위치한다. 원래는 황하(黃河)와 연결된 큰 담수호였으나 지각변동으로 물길이 막히면서 담수호가 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가 오래전부터 줄어들었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 등으로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칭하이호수에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천여 년 전 당(唐)나라의 문성(文成)공주가 토번왕 송첸감포와 혼인을 맺고 티베트의 라싸를 향해 당나라의 도읍 장안(長安-오늘날의 西安)을 출발한다. 당나라 황제는 문성공주에게 고향의 경치를 그린 거울 일월보경(日月寶鏡)을 하사했고 기나긴 여로에 공주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거울을 꺼내서 보며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당번고도(唐蕃古道-당나라와 토번을 잇는 옛길)를 지나며 르웨산에 이른 문성공주는 당태종이 고향이 그리워지면 보라고 하사한 일월보경을 산 아래 던져 버렸는데 거울이 떨어진 자리에 호수가 생겨났고 그 호수가 바로 칭하이호수다.

칭하이호수 주변을 돌 수 있는 일주도로가 있으나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지에서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일. 칭하이호수에 손을 한번 담그고는 호수 남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샹피산을 내려서면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12월이라 노랗게 물든 초원이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노란 초원에는 셀 수 없는 양과 야크, 말들을 평화롭게 방목을 하고 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가축이 공존하는 목가적 풍경이 신기하다.

반대로 바람이 많은 지역은 어김없이 풍력발전을 한다. 천연 에너지를 얻기 위한 중국의 각고의 노력이지만 경치가 괜찮은 등성이마다 거대한 바람개비들을 설치해 놓아서 가끔은 짜증이 난다.

따오탕하 시원지와 표지석
따오탕하 시원지와 표지석

르웨산에 가까워지자 따오탕하 고속도로IC 옆에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바로 따오탕하(倒淌河)다. 위수 가는 길과 칭하이호 가는 길이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지로 티베트 일주를 시작하면서 위수로 갈 때 지났던 곳이다.

옛날 당 태종의 양녀였던 문성공주가 티베트 왕 송첸감포에게 시집가던 중에 고향 생각을 하면서 시한수를 남겼는데, “세상의 모든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건만,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하고 탄식을 하자 갑자기 강물이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거꾸로 흐르게 되었다는 개천이다. 그래서 개천의 이름이 따오탕하(倒淌河) 즉, ‘거꾸로 흐르는 하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이다.

따오탕하는 원래 동쪽으로 흐르던 강으로 황하(黄河)로 흘러들었으나 지각변동으로 서쪽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성공주의 전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따오탕하 고속도로IC에서 약 1킬로미터 남짓, 르웨산(日月山)이 있다.

칭하이 동쪽 농업지역과 서쪽 목축업지역의 경계선이다. 예로부터 중국 땅에서 티베트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이 지점을 기준으로 기후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국도에서 좌측으로 르웨산으로 가는 갈림길로 접어든다.

르웨산경구(日月山景区, 3,520m)입구. 산비탈에는 기념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9m에 이르는 거대한 옥으로 조각된 문성공주상과 일정(日亭)과 월정(月亭) 두 개의 정자가 세워져 문성공주(文成公主)와 관련된 전설이 정리된 곳이다.

탐사대의 길고 긴 티베트, 위구르의 전설 같은 장정도 어느덧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15,000 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티베트, 신장위구르 일주를 마무리하며 시닝으로 향한다.

시닝은 대장정을 사실상 시작했던 곳이다.

시닝에서 출발한 일정은 허카현 초원제일진에서 숨고르기를 한 연후에 칭하이성의 마둬(瑪多)와 위수(玉樹)를 거쳤다. 그 무렵 지독한 고산병을 이겨내며 거침없이 쓰촨성의 일대를 답파했다. 라싸와 간체, 시가체 등의 주요 도시들의 속살과 현실도 목도하였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웠던 히말라야의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산)와 짜다토림, 구게왕국, 푸란을 거쳤고, 세계의 지붕이라는 카라코룸산맥을 넘어 도착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세상사의 흐름도 느껴보았다. 실크로드 텐산남로 상의 오아시스였던 카슈가르와 쿠처를 지나 제2사막공로를 통해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사막을 경험했다. 이미 오래전 그 역할을 다하고 모래바람에 스러졌던 서역남로의 도시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홀가분하고, 홀가분하지만 아쉬운 뒤안길을 두고 원점회귀하면서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의 무시무시한 변화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악몽처럼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어떤 공포인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20여 군데에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티베트, 신장지역 뿐 아니라 캐시미르를 사이에 둔 인도, 자원의 보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영해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난사군도(南沙群島 또는 Spratly Islands)와 댜오위다오(釣魚島 또는 센카쿠열도, 尖閣列島) 심지어는 우리 땅 이어도와 파랑도까지 자기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엄청난 지하자원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 즉, 영토란 무조건 큰 것이 좋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관념이기도 하다.

변경(邊境)문제해결이 곧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원대한 목표는 당연하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 경제적으로 ‘혁신(China Innovation)’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놀랄 것도 없다. G1의 초일류국가를 꿈꾸는 대국답게 수많은 프로젝트가 국가 주도 아래 쉼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 저력과 규모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중국에 대한 몰이해나 불편한 감정으로 중국의 정체를 간과하고 있었음을 중국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반성하게 된다.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단연코 영토 확장 및 세계중심을 도모하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중국을 만나야하는가?

작가 조정래 선생의 경구를 새겨둠직하다.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다”-소설<정글만리> 중에서

어느새 하늘을 찌를 듯한 시닝의 고층빌딩이 품을 열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휴식을 취하러 도시로 향한다.

다시 돌아 올 날을 고대하며. 我会再来!

아얼진산맥을 넘어 거얼무로 가는 길
아얼진산맥을 넘어 거얼무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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