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40편] 위구르족의 거울, 카슈가르 바자르

백민섭 승인 2021.09.27 13:25 | 최종 수정 2021.09.27 13:37 의견 0

교통이 발달하면서 카슈가르(Kashgar)는 이제 더 이상 낭만적인 풍경의 오아시스가 아니다. 넓게 뚫린 도로, 고층 건물들, 수없이 오가는 차량행렬, 도시 곳곳에서 쉽게 만나는 한족들. 중국의 여느 도시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위구르인들의 오롯한 터전과 역사가 피해를 보았다.

중국정부는 구시가지 일부를 남겨두고 2010년부터 ‘전통가옥 개조·정돈사업’을 기치로 도시개발을 단행했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신장지역에서 흙집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이유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이슬람도시로 평가받던 위구르족 전통촌락 카드미셰해르(老城)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당사자들인 위구르인의 반응은 차갑다. 카드미셰해르가 어떤 곳인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마을로 위구르족 공동체의 산실이자 전통문화의 보고다. 중국정부의 지배를 받기 전, 여섯 개 정도의 큰 노성(老城)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개발로 원형이 축소되거나 해체되었다. 2018년에 쿠드자 비쉬(高臺民居)라는 유명한 구역이 재개발되면서 실질적으로 한 구역만 남았다. 이드카흐 모스크 길 건너편의 노성은 잘 꾸며진 관광지로 변해버렸다.

흙벽 위에 새로 만들고 있는 노성(老城)은 보존이 아니라 재현하는 방식이다. 일단 철거 후 재조성한 신도시는 마치 중세 서양의 도시를 둘러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대화된 민속촌이 되었다. 위구르인들에게는 정말 속 뒤집히는 재개발이 아닐 수 없다.

중국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처럼 전통이고 문화고 싹 쓸어버리는 식은 더 큰 저항을 초래할는지 모른다.

복원된 노성(老城) 쿠드자 비쉬(高臺民居)
복원된 노성(老城) 쿠드자 비쉬(高臺民居)

위구르인들에게 카드미셰해르(老城)라는 전통가옥은 단순한 집이 아니다. 그 집과 골목에서 다양한 기념품, 일상용품, 먹을거리 등을 파는 명소이자 시장(바자르)와 연계되어 생계를 이어가던 기반시설이다.

중국정부는 그 기반을 흔들어 공동체를 해체하고 주민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카드미셰해르는 모스크, 바자르와 더불어 위구르족을 상징한다. 바자르와 전통부락이 현대화될수록 상권은 기차를 타고 온 한족들에게 장악되고, 위구르인들은 그만큼 시장에서 멀어진다. 서로 안부를 묻고 교류하던 그들만의 독특한 연대의 장마저 진창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반정부 성향의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요즘 중국정부의 속내를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끊임없이 독립을 주장하는 위구르인들의 시장모임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카슈가르의 도도한 역사를 상징하는 전통마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카슈가르하면 전통 시장, 즉 바자르(Bazaar)가 유명하다. 북동쪽에 있는 일요시장 동바자르는 중국 서북지역 최대의 바자르였다. 카슈가르는 옛 실크로드 중심 도시였지만 현재도 물류의 집산지로 텐산남로(天山南路)와 텐산북로(天山北路)를 통해 수많은 나라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차고 넘친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카슈가르의 명물 동(東)바자르가 2004년 도시정비사업에 따라 중시야바자르(喀什中西亞国际贸易市场)로 바뀌었다.

때문에 카슈가르의 상권이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최근 떠오르는 황금상권인 ‘카슈가르상업보행가(喀什商業步行街)’가 그 중 하나다.

위구르인들의 정신적인 성지인 이드카흐 모스크 건너편에 한족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쇼핑센터 카슈가르상업보행가는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시장으로 현대화된 쇼핑공간과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가 중국의 여느 대도시 못지않다. 중국 공장에서 직수입된 값싼 물건과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이 많아 위구르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카슈가르의 중심이, 이드카흐 모스크(艾提尕尔清真寺)를 근거로 한 위구르족 세력에서, 마오쩌둥동상을 중심으로 한 인민광장 부근 상업보행가(商業步行街)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 상권을 한족들이 끊임없이 먹어치우고 있다.

위구르인들의 셍치티엔(星期天)이라는 재래시장은, 한족 중심의 현대화된 카슈가르상업보행가와 중시야(中西亞)시장에 압도되어 점점 활기를 잃고 있다.

중시야시장이 365일 여는 상설시장이 되면서 셍치티엔시장은 일요일에만 여는 노천시장으로 변했다. 그마저도 몇 년 전 테러사건 이후 보안을 이유로 과일을 제외한 모든 물품의 거래를 금지시켜 사실상 죽은 시장이 됐다.

그 역사가 무릇 2000년이며, 고대에는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카슈가르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왔던 바자르가 위구르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중시야시장이 카슈가르의 대표시장이 되었다. 참 세월난망이다.

카슈가르상업보행가 풍경
카슈가르상업보행가 풍경

카슈가르의 명물 전통시장도 예전 같지 않다. 시골장터 풍경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낭만적인 이기심이려니 자책도 해보지만 본래의 색깔을 잃고 있는 점은 못내 아쉽다.

위축된 시장 구경에 나선다. 시장은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상점이 상품 종류별로 구역에 따라 잘 구축되어 있다.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널찍한 입구에서부터 진열된 물건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가짓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과일과 견과류, 위구르인들의 전통의상, 털모자뿐 아니라 잉지샤에서 공급된 것으로 보이는 수제 칼과 신장지역 명품인 카펫과 품질 좋고 값싼 캐시미어 관련 면제품은 특히 인기가 많다. 아직도 약 5천개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카라코람하이웨이 덕분에 이웃한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공급되는 물류가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국경을 면한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과도 국경무역이 활발하다고 하니 21세기에도 여전히 실크로드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상적인 것은, 북적거리는 시장통에서 하루를 준비하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해맑고 진지하다는 점이다. 시장 입구에서 철통경계를 하는 중국공안들만 없다면 전혀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 이국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람과 풍물과 분위기를 느끼게 되면 가슴이 뛰는 것은 자연스럽다. 바자르는 카슈가르라는 도시에 활력을 충전해 주는 에너지다. 위구르인들에게 시장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시장 중에 가장 역동적이고 원초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시장이 있다.

일요일, 카슈가르에서 약 20km 떨어진 황디향(荒地鄕)에서 열리는 가축시장 우락(牛羊)바자르가 그곳이다. 소와 양을 주로 거래하지만 신장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양을 키우는 지역이라 주요 거래 품목은 역시 양이다.

시장 입구부터 각양각색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하얀 도파를 쓴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시장은 울어대는 양과 흥정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뒤엉켜 시끄럽기도 하지만 양과 얽힌 사연들이 천일야화처럼 번지고 있다. 시장 주변에는 손수레에 실린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이 여행자들의 코와 눈을 자극한다. 손수레에 간판처럼 진열된 염소대가리는 잠시 섬뜩할 수 있으나 양꼬치와 국수, 화덕에 구운 낭 등 다양한 위구르음식과 솜씨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사는 맛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원의 햇살아래 시장은 평화롭고 끈적끈적하고 맛있다.

하루해가 기우는 황혼 속으로 걸어가는 당나귀 수레. 팔다 남은 양배추 몇 개를 싣고 터덜터덜 시장을 떠나는 위구르 노인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카슈가르 시장 풍경
카슈가르 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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