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9편] 풍요로운 오아시스 도시, 카슈가르(Kashgar)

김숙경 기자 승인 2021.09.16 11:17 | 최종 수정 2021.09.16 11:26 의견 0

카슈가르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신장성 타리무분지 카시지구 카시시(新彊省 塔里木盆地 喀什地区 喀什市)다. 그러나 위구르인은 ‘카슈가르(Kashgar)’라 부른다. 타리무(塔里木) 분지 서쪽 끝, 바람에 의해 침적된 황토와 충적토로 이루어진 오아시스 위에 건설한 도시다. 현대에는 이국적인 풍물 때문에 실크로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도시 중의 하나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回族) 우즈베크족(乌孜别克族), 키르키스족(柯尔克孜族), 타지크족(塔吉克族)등 13개 민족이 거주하지만 위구르족이 다수다. 세월이 무색하게 아직도 서역의 독특한 문화가 진하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걸어도 중국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 바로 신장이라하지 않던가. 위구르족은 외모부터가 다르다. 흰 피부에 오뚝한 콧날, 큰 키에 떡 벌어진 서구적 골격, 위구르 전통 모자 '도파(doppa)'를 쓴 남자와 온몸에 '히잡'을 두른 여성들에게서 중국의 향기를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다민족 사회다. 신장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그냥두지 않았다. 빼앗고 뺏기는 전쟁의 역사는 수천 년을 이어왔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종족들이 섞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인종적 혼혈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그 결과 하이브리드형 인간으로 진화했다. 특히 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밭 매는 아가씨도 미스코리아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루가 아니다.

‘위구르의 여신’이라 칭송하는 구리나자(古力娜扎, Gulnazar)와 함께 2대 미녀로 불리는 디리러바(迪丽热巴, Dilraba)는 중화권의 스타로 발돋움했고, 멀게는 청나라 건륭제의 후궁 향비(香妃) 등 위구르를 비롯한 서역출신의 미녀는 차고 넘친다.

미녀만 많은 것이 아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위구르족은 손님접대하기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들 중 나쁜 사람 있던가.

그동안 중국발 뉴스를 통해서 각인된,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훈훈한 인간성과 독특한 감수성이 매력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머무는 시간만큼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

라싸에서 출발하여 3000 여 킬로미터를 달려서야 도착한 카슈가르.

신의주와 부산을 3번 오가야 하는 길이다. 카슈가르는 그 이름에 담긴 여러 의미처럼 기가 막힌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카슈가르!(Kashgar, '각양각색의 집'이라는 뜻)

고대에는 서역(西域)이라고 불렸다. 중국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선명한 곳으로 ‘실크로드의 진주’라고 불렸던 곳이다.

둔황에서 갈라진 텐산남로와 타클라마칸사막의 북과 남을 경유한 오아시스길이 다시 만나는 깔때기의 목 같은 곳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남서쪽에 위치한 난장(南疆) 즉, 신장 남부지역의 상업, 문화, 종교 중심지이자 위구르족의 터전이다.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과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경계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쿤룬산맥과 인도의 잠무캐시미르, 북쪽으로 우루무치(烏魯木齊)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해발 1300여 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나 대륙성 온대기후로 사계절이 분명하고 혹한과 혹서가 없는 쾌적한 지역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오갔던 대상들이 고된 행로 중에도 이곳에서 휴식과 여흥을 즐겼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쓴 당나라의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 불경을 가지러 가다 들렀고, 몽골의 황제를 만나러 가던 마르코 폴로, 그리고 신라의 혜초스님과 고구려의 후손 고선지도 이곳을 지나 서역정복에 나섰다 하니 역사와 스토리가 무궁무진한 곳이다.

신장지역으로의 여행은 쉽지 않기 때문에 꼭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곳이다. 수고로움 이상의 매력이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카슈가르 노천시장
카슈가르 노천시장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위구르족(Uyghur)은 투르크계 민족이다. 그들의 운명이 참으로 길고도 험난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카슈가르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기원전 2세기 한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실크로드를 비롯한 서역을 개척하면서 시작된다. 당시에는 소륵국(疎勒國)이었다. 이후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가 唐대에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淸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청나라 말 정치적 혼란기에는 러시아와 영국간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때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을 받아 1930년대, 1940년대 두 차례 등 3차례에 걸쳐 동투르키스탄이(East Turkestan Republic)란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중국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등 8개국과 5400킬로미터에 걸쳐 국경을 공유한 카슈가르는 정치, 군사적으로는 요충지대이고 경제적으로는 천연자원의 보고로 중국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특수한 지역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강제합병하고 '새로운 경계'를 의미하는 ‘신장(新疆)’이라 불렀고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가 되기에 이른다.

1991년 12월 8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결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등 투르크 민족 독립국가들이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투르크의 맹주인 터키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투르크 벨트가 만들어졌다. 1000년 전 실크로드를 지배하던 투르크 민족의 범투르크주의(Pan-Turkism)가 다시 주목받았다. 투르크 벨트를 연결하는 마지막 땅이 중국에 합병된 신장 지역이다.

위구르족 역시 범투르크주의에 영향을 받아 분리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1997년, 2008년에도 독립시위가 있었고, 2009년에는 신장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鳥魯木齊)에서 분리 독립 요구 시위를 벌이다 수백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 불신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에 치안병력을 대폭 강화하고 위구르 언어와 교육, 종교 활동 등을 시시콜콜 억압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왜 위구르인을 철저하게 탄압하는 것일까?

한족 중심인 중국 동부와 달리 신장은 중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고유 언어를 고집하는 위구르족은 중국화가 쉽지 않은 민족이다.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기를 거부하는 위구르족 문제는 중국 내부에서 티베트 문제보다 훨씬 골치 아픈 문제로 알려져 있다.

비폭력적 독립운동을 전개 중인 티베트 달라이라마와 달리 이 지역은 19세기 이후 무려 200년 가까이 무력투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정부는 70년간 제국주의적 '동화, 말살 정책'을 통해 탄압하고, '신장 개척'을 내세워 1962년엔 란신(蘭新, 간쑤성 란저우-신장 우루무치) 철도를 통해 한족을 대거 이주시켰다.

'위구르의 위구르인은 대지가 낳고, 위구르의 한족은 기차가 낳는다'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 결과 위구르 내 한족의 비율은 40% 이상, 최대도시인 우루무치는 최근 기준으로 무려 약 80%에 이른다. 카슈가르도 상대적으로 위구르인의 비율이 최근 몇 년 사이에 90%에서 80% 정도로 낮아졌다는 통계다. 이 먼 서역 땅 신장위구르지역에도 '한족'의 유입은 거침없이 직진하며 위구르를 잠식하고 있다.

한족 인구가 70% 이상을 넘어서면 자치구로서의 역할이 무의미해지게 된다는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자치구에서 중국정부의 통제를 확실히 받는 성(省)으로 바꾸기를 의도하는 것은 아닌지.

2017년도부터는 전례 없이 대규모의 위구르인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세뇌공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와 내몽골에서 진행된 소수민족의 강제 동화(同化)정책과는 전혀 다른 기세인 이 공작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도하는 일대일로(一帯一路)가 있다. 실크로드의 현대판으로 불리는 이 야심적인 인프라 건설은 결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를 가장 중요한 허브(hub,중추)로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허브는 지역 사회의 장기적인 안정이 요구된다. ‘분리주의’와 ‘과격’한 위구르민족의 반중성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공산당수뇌부의 강경한 입장이 대탄압을 부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대일로(一帯一路)'의 불편한 진실이라고나 할까.

2018년에도 신장지역의 위구르인을 100만 명 이상을 강제수용(정치적 성격의 수용소인 '재교육 캠프')하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유엔인권위원회가 수용소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2018년 10월, 한 연설에서

"신장(新疆)에서는 중국공산당이 100만 명이나 되는 이슬람계 위구르인을 강제수용소에 구속하고 주야를 불문하고 세뇌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위구르 문화를 교살하고 이슬람 신앙을 짓밟으려는 의도적인 시도라고 위구르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라고 한 것으로 봐서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신장위구르자치구가 뜨거운 감자인 것만은 확실하며,

수백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독립을 원하는 위구르인들의 염원 또한 길고도 끈질기다.

카슈가르는 지리 문화적 측면에서 천혜의 요소를 갖춘 곳이다.

우뚝 솟은 산부터 사막, 초원, 고원지대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기묘한 자연풍광과 역사적 유지(遗址), 독특한 민족특색이 농후한 카슈가르는 신장 남부지역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구다. 파미르 고원, 카라쿨 호수, 타클라마칸사막,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 이드카흐 모스크, 대형 이슬람식 건축인 향비묘, 천불동 등 헤아릴 수 없는 유산들이 있다.

'카슈카르에 오지 않고 신장에 왔다고 할 수 없다(不到喀什 不算到新疆)'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많은 유산 중에 카슈가르가 자랑하는 것은 이슬람 유산이다. 특히 사원이다.

사원을 보면 위구르가 보인다. 한때 불교도였던 위구르인들 중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도 카슈가르 사람들이다. 주변을 둘러싼 투르크계의 영향 때문이다. 10세기 경 최초의 터키계 이슬람 왕조인 카라한(Karakhan)이 왕도를 세우면서 카슈가르가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는 전진기지가 됐다. 이후 신장위구르지역은 급속히 이슬람의 세상이 되었다. 이슬람 문화가 바로 카슈가르의 문화이고, 위구르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장에는 현재 약 500여개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그 중의 진수는 카슈가르시 중심인 해방로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드카흐 모스크다.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사원 중 하나로 카슈가르를 상징하는 의미를 넘어 위구르족 삶의 중심이 되는 사원이다. 이드카흐(Id Kah)는 '기념일에 예배드리는 장소'와 '축제의 광장'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드카흐 모스크(艾提尕尔清真寺, Id Kah Mosque)가 있는 자리는 원래 묘지였다. 9세기경 궁정 관료들이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고, 실크로드를 왕래하던 거상들과 아라비아인, 페르시아인들의 무덤이 되었다. 1422년(이슬람력 846년) 카슈가르의 집정왕이었던 사퀴씨즈 미르자(沙克色孜米扎尔, Saqisiz Mirza)가 죽자 후손들이 왕을 기리기 위해 그 무덤에 조그마한 사원을 세우고, 매일 참배를 드렸다. 그것이 이드카흐 모스크의 시초다.

이슬람에서 건축은 문화의 결정체다.

스페인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과 , 인도의 타지마할(Tj Mahal)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함에서는 궁전이나 왕릉들이 압권이지만 이슬람 건축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것은 무슬림들의 예배 장소인 모스크(Mosque, 사원)다. 모스크의 넓은 공간은 이슬람 유일신의 통합적인 힘을 실증하는 곳으로 화려한 아라베스크 장식은 영적으로 신의 무한한 위대성을 묘사한다. 이것이 이슬람세계를 하나로 묶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가 된다.

이드카흐 모스크는 1538년 대대적인 확장과 이후 몇 차례 중축을 거듭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모스크 앞 광장은 매우 넓고 순례자와 장사꾼들로 항상 북적인다. 사원 주변에 수많은 가게들이 이슬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이드카흐 모스크(艾提尕尔清真寺)
이드카흐 모스크(艾提尕尔清真寺)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높이 12m에 이르는 황토색 문루와 그 옆의 대형 원기둥 탑이다.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의 형태다. 고대에는 항해나 사막 여행자의 길을 안내하는 기능도 있어서 일명 ‘등탑’이라고도 했던 '미어자나'(Mi’dhanah, 또는 minaret)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첨탑이다. 매일 5차례,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 ‘아잔’(adhan)이 흘러나온다. 요즘은 스피커를 통해서 듣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무아진(mu’adhdhin)이 읊조리는 ‘아잔’이 특유의 리듬감으로 마음속에 파고든다.

사원의 구조는 매우 정연하면서 위엄이 있다. 사원 남북길이는 140미터, 동서 폭은 120미터, 면적 16,000㎡(약 4800여 평)에 달한다. 정문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연녹색 꽃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 광장과 나란히 이어진 예배당과 교경당(教经堂)이 이슬람 특색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드카흐 모스크는 종교 활동의 중심지인 동시에 무슬림의 축제 '쿠르반 헤이트(Kurban Heyit-이슬람력 12월에 '희생양'이라는 의미를 가진 축제로 위구르족들의 최대 명절. 로즈헤이드(라마단) 종료일로부터 70일이 되는 날 열린다)와 로자 헤이트(Roza Heyit-이슬람력 9월에 있는 라마단 축제가 끝나고 벌어지는 축제. 로자는 '금식', 헤이트는 '축제'를 의미)'때는 축제의 장소가 되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런 철옹성 같은 종교적 위세가 중국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신장위구르와 중국정부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종교탄압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 당국이 주목한 것은 위구르인들의 신앙심이다.

위구르인들의 투철한 신앙심을 뿌리 뽑기 위해 지방의 공산당 관리들은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민한통혼(民漢通婚)가정 장려 조치' 정책이다. 한족과 소수민족 간 결혼한 커플에게 재정적 혜택을 지원하는 것으로 결혼과 함께 곧바로 현금을 지급하고 주택우선배정권과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방 공산당은 이 통혼 장려책이 ‘소수민족 간의 융합과 통합을 향상하기 위한 웅장한 몸짓’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떤 중국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SF 영화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외계종족 ‘보그(Borg)’를 따라하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스타트랙>시리즈에 나오는 ‘보그’는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같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마치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거대한 군락을 이룬 개미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식으로 흡수해 버리는 캐릭터다.

"우리는 보그다. 우리에게 항복하라. 너희들의 생물학적, 공학적 성질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너희들의 문화는 우리를 위해 적용될 것이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라고 협박하면서 타 종족을 동화시킨다.

신장위구르에서는 중국공산당 지방정부가 ‘보그’다. 위구르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입는 히잡(Hijab)과 남성들의 상징인 수염을 금지했다. 또, 행정 수단을 동원해 이슬람 최대 명절 라마단 동안 금식을 통제하는 것은,

바로 보그의 '...너희들의 문화는 우리를 위해 적용될 것이다. 저항은 무의미하다'와 무엇이 다른가?

민한통혼(民漢通婚)으로 이슬람이라는 투철한 신앙심을 한족출신의 배우자가 무력화시키는 것을 기대하지만 그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고 우려한다.

한족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과 문화, 언어, 종교를 유지하며 수천 년을 살아왔다. 달콤한 생계지원금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위구르족의 본능적 반향을 잠재울 수 없는 까닭이다.

최근 수년간 라마단을 앞두고 공산당원과 공무원, 학생, 교사를 상대로 금식금지령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종교 활동은 제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공산당은 종교를 싫어하고, 그 종교적 기반에 분리주의와 테러리즘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무슬림의 부활이 다른 중국 내 비(非) 위구르 무슬림 단체로 확대되고 결국 공산당의 근간을 무너뜨릴까 두려워서 박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슬람교에 대한 중국정부의 강력한 탄압이 진행 중인 지금 위구르인들 저항 또한 격렬하다. 당분간 신장지역은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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