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sy의 차이야기 열다섯 번째] 콤부차 마시고 춤을

김원경 승인 2021.03.04 10:55 | 최종 수정 2021.03.04 11:07 의견 0

언젠가부터 춤을 추지 않았다.
신나는 음악을 들어도 어깨를 들썩이지 않는다.
그래도 90년대 말 홍대 '발전소'에서 댄싱 퀸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나인데. 

홍대 발전소는 우리나라에서 음악이 가장 빠른 클럽이었다. 세계 음악이 가장 먼저 소개되고 퍼져나가던 곳. 배철수의 음악 캠프도 홍대 발전소에서 새 음악을 소개받는다는 소문이 있었고 배창호 감독이나 마광수 교수도 단골이었다. 문화의 최전선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방송 관련자들도 많이 왔는데 PD로 일하던 남편이 나를 발견한 곳도 홍대 발전소였다. 

한 남자가 스텝을 밟으며 다가오더니
'눈을 감은 채 날개를 펼치듯 두 팔 벌려 음악을 유영하는 모습이 자유로운 한 마리 종달새 같다'고 뻐꾸기를 날렸다. 약간 대머리 기가 있었고 스텝이 촌스러웠고 진지했다. 

마지막으로 춤을 추던 기억은 아들을 낳고 젖을 물린 채 투머치해븐을 틀어놓고 아이와 추던 블루스였다. 

'엄마는 
목이 말라도 
몸이 아파도 
다락처럼 무거워도 
야근처럼 피로해도  
계속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가야만 한다' (김승희의 시, 쌍봉낙타) 

외롭던 육아와 현명한 아내여야 한다는 두 개의 혹이 등에 달려 덜컹거리고 발바닥이 뜨거워 몸을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지만 춤은 아니었다. 

한 학기 남은 재즈 아카데미를 그만두었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들이 아장아장 혼자 밖으로 나왔다가 후진하던 차에 넘어졌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선생님이 울면서 전화한 날이었다. 창작 오페라에 들어가는 몇 개의 곡도 마무리 녹음만 남았지만, 후배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영원히 집으로 돌아왔다.
뻐꾸기는 그동안 다닌 게 아깝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걸 만류하다가 편집이 밀렸다고 전화를 끊었다. 

작년 여름, 아들이 몽튼 다운타운에서 길거리 공연을 했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가고 대여섯 정도의 행인만 잠시 멈추고 연주를 들었다. 아들이 테네시 위스키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박자를 맞추었다. 기타 솔로가 터지는 부분에서 할아버지가 마침내 지팡이를 집어 던지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위태로운 다리가 경쾌하게 흔들거리고 두 손은 허공에 깃발처럼 펄럭였다.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을 때 사람들이 재빠르게 잡아주었다. 

할아버지가 춤을 춘다.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한 채, 어린아이처럼 꾸밈없고 기괴하고 아름답게 춤을 춘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춤추며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등에 난 커다란 혹을 흔들고 싶었다. 
쌍봉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실은 쌍봉이란 없는 거니까. 발바닥 뜨거운 모래를 다 파내버릴 때까지. 실은 모래는 없는 거니까. 

독소가 몸에 쌓여서 그랬을지 모른다.  
망설임과 포기에 유폐된 채 춤추는 걸 유예하면서 점잖게 쌓인 젊지 않은 마음. 

독을 빼줄 콤부차(Kombucha) 디톡스를 꺼내 마신다. 
고대 몽골인들의 지혜가 담긴 마법의 차다.
몽골인들이 초원을 질주할 때 약으로 마시던 차였으나 효능이 널리 알려지자 진의 시황도 매일 마셨다 한다. 
홍차를  '스코비(Symbiotic Colony Of Bacteria & Yeast)'라는 신비한 유익균을 넣고 발효 시켜,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이제는 원산지였던 몽골보다 오히려 서구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핫한 차. 

딱딱해진 근육을 정화해줄 것이다. 
혹이 떨어진 상처도 아물게 할 것이다. 
가볍게 몸을 날리는 어린아이의 춤을 다시 출 것이다.
겨울바람이 부는 시베리아를 상상하며 
콤부차로 마법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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