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부르는 사운드의 힘: '인시디어스'

장서희 승인 2021.01.28 17:34 | 최종 수정 2021.01.29 09:35 의견 0

<인시디어스>는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 이후 이른바 ‘먼 그 곳’으로 영혼이 유리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그 곳으로 떠나는 아버지 조쉬의 이야기를 그린 공포영화이다.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정석대로 영상뿐 아니라 공들인 사운드디자인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한다. 음악감독 조셉 비샤라는 바이올린 4대와 피아노 한 대를 동원해 기괴한 음악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대부분은 불협화음을 이룬다. 조용한 가운데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큰 소리의 바이올린 현의 마찰음과 괴상한 피아노 연주가 끼어들며 관객의 신경을 긁는 식이다. 

조쉬의 아들 달튼이 다락방에서 전등줄을 당기기 위해 삐걱삐걱 위태롭게 사다리를 오르는 장면에서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미국영화의 오랜 전통 중 하나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무언가 불안한 상황이 진행될 때면 늘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등장시킨다. 달튼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날카로운 것이 바닥을 긁는 듯한, 뻑뻑한 관절이 겨우 움직일 때 나는 것 같은 까드득 까드득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는 악마의 존재를 나타내는 소리로, 이후 영화 ‘인시디어스’의 세계관 속 최악의 악마인 립스틱 페이스(붉은 얼굴 악마)의 등장을 나타낸다. 이처럼 악마는 가장 먼저 소리로 등장을 알린데 이어 소리와 그림자로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달튼의 비명에 엄마 르네가 놀라서 달려간다. 그 타이밍에 맞춰 마치 양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내려치는 듯한 피아노 연주가 쏟아진다. 르네가 비정상적 상황을 겪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천둥처럼 쏟아지며 관객들에게 경고를 날린다. 이후 병원 장면에서는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사실적인 엠비언스(현장 배경 사운드) 대신 채워진 현악과 피아노의 느린 협주는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 앞에서 현실과 유리된 것처럼 느끼는 조쉬 부부의 피폐한 심리를 대변한다. 

얼마 뒤 어린 시절 조쉬를 도와줬던 영매 엘리스가 집으로 찾아온다. 달튼을 구하기 위한 의식이 시작되면서 카메라가 천장을 부유하며 인물을 내려보는 불가능한 시점의 샷이 등장한다. 실링팬은 화면을 가리고, 이에 대응하듯 팬 소리가 현실의 소리를 가린다. 곧이어 악마의 소리가 들리자 엘리스의 시선은 천장을 향한다. 천장에서 내려보던 불가능한 시점의 샷은 악마의 시점샷이었던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악마의 얼굴을 묘사하는 엘리스. 음산하게 깔리던 엠비언스는 점점 커지면서 음악소리로 바뀌고, 카메라가 천장을 비출 때마다 실링팬은 짐승의 울음처럼 울부짖는다. 엘리스는 어린 시절의 조쉬처럼 달튼 역시 유체이탈로 그 영혼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인 '먼 그 곳'을 헤매고 있으며, 악령들이 달튼의 몸을 노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엘리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카메라는 인물들에게 천천히 접근하고 음악은 강박적으로 반복적인 선율로 변해간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악마인 립스틱 페이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선율이 다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쉬와 뭐라도 하자는 르네가 대립하고, 음악은 앞서 병원 장면과 같은 피아노와 현악곡으로 바뀐다. 마침내 조쉬가 엘리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단서를 발견할 때까지 음악이 이어진다. 결국 조쉬는 달튼을 데리고 오기 위해 그 자신이 '먼 그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영화 속 세계에서 앨리스가 한 의식과 그녀가 제시한 해법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만일 앨리스의 해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조쉬 부부가 앨리스에게 법적으로 사기죄의 책임을 물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무속인의 행위에 대해서 우리 법원은 전통적인 관습의 한계를 벗어나 피해자에게 불행을 고지하거나 길흉화복에 관한 어떠한 결과를 약속하고서 기도비를 받아낸 경우에는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이와 달리 별다른 기망행위가 없었음에도 피해자가 힘든 상황에서 무속의 힘에 의지해 보려는 생각에서 무속인의 제안에 응하였거나, 무속인이 진실로 무속행위를 할 의사가 없거나 자신도 효과를 믿지 아니하면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가장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다. 결국 영적인 행위가 전통적 관습이나 통상적인 종교행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경우라면 결과적으로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범한 능력자인 앨리스의 처방에 따라 아들을 찾아 '먼 그 곳'으로 떠난 조쉬는 무사히 돌아와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이 흥미진진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 영화의 엔딩이 아니라 영화의 속편 <인시디어스 2>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다. 

(사진 출처=영화<인시디어스>, 감독 James Wan, 제작 Blumhouse Productions 수입 코리아스크린)

저작권자 ⓒ OBSW,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