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영웅들의 이야기: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장서희 승인 2021.01.08 11:09 | 최종 수정 2021.01.08 11:16 의견 0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은 155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뉴욕의 허드슨강에 비상착수하여 전원이 생존한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오롯이 그 날의 기장이었던 설리를 따라 전개된다. 청문회라는 장치를 통해 회항을 포기하고 허드슨강에 비상착수를 한 그 날의 선택이 옳았는지 설리 자신조차 의심하는 모습들을 차분히 그려낸다. 영화 초반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홀로 거리를 달리는 모습, 김이 가득한 욕실에 앉아있는 모습, 뿌연 거울을 닦은 뒤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는 클로즈업 등은 모두 설리의 불안과 의심을 상징하는 미장센이다.

예비 청문회를 마친 뒤 악몽에서 깬 설리는 부기장 스카일러와 밤산책을 한다. 망원렌즈는 밤거리를 걷는 둘의 형상을 또렷하게 잡아내지만, 그들을 둘러싼 앞뒤의 배경은 얕은 심도로 인해 흐릿하게 뭉개져 있다. 비상착수 이후 현실로부터 유리된 채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씬의 말미에 두 사람이 내일을 기약하며 뛰기 시작하는 순간, 카메라는 표준렌즈를 통해 그들 앞에 펼쳐진 배경을 뚜렷하게 포착한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현실로 뛰어들려는 두 사람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비상착수의 날로 관객을 인도한다. 샌드위치를 사서 공항 내 상점을 나서는 설리가 퇴장한 뒤에도 카메라는 그 곳을 떠나지 않는다. 컷 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프레임으로 들어와서 씬을 계속 진행시킨다. 설리에 가려 잊혀져 있던 또다른 주인공인 승객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설리와 승객들을 하나의 테이크로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서 카메라는 설리의 비행기에 뒤늦게 탑승한 세 사람의 시점으로 승객으로 가득 찬 비행기 내부를 훑는다.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을 강조하기 위해 스테디캠 카메라는 깊은 심도의 롱테이크로 모든 승객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륙 직전 앞의 롱테이크에서 한 번이라도 대사나 액션이 있었던 모든 인물들의 클로즈샷이 지나간다. 설리가 구해낸 생명들의 소중함을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비상착수 이후의 상황을 그린 감동적인 시퀀스가 길게 펼쳐진다. 위기 속에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승무원과 부기장, 페리 선장과 승무원, 해양구조대와 뉴욕소방국, 무엇보다 두려움 속에서도 침착하게 서로를 도왔던 승객들. 그리고 비행기의 최고 책임자였던 설리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승객을 찾기 위해 물에 잠겨가는 비행기에서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탈출한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 모두가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영웅들이다. 

영화는 청문회장에서 마무리된다. 설리가 시뮬레이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비상상황은 ‘155명을 태운 채’였다고 말하는 순간, 카메라는 설리를 비춘 클로즈업으로 청문회장 내를 압도한다. 설리가 짊어진 생명들이 지닌 압도적인 무게를 대변하는 순간이다. 이후 그날의 실황 사운드가 공개된 뒤, 설리와 스카일스는 휴식을 요청하고 짧게 복도를 걷는다. 앞서 둘의 밤산책 장면과는 반대로 이 장면은 단렌즈로 촬영되었기에 그들 뒤로 보이는 배경의 심도가 매우 깊어서 그 공간이 또렷하게 각인된다. 뚜렷한 공간 속에 서 있는 그들은 더 이상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냈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평가될 지에 대해서 현실 한 가운데에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해낸 일에 대한 불안이나 의심은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딘 채 다음 걸음을 내딛을 차례이다.

영화는 주인공 설리의 악몽을 통해 9·11 테러라는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를 소환한다. 직접적인 설명은 없지만 비행기가 뉴욕의 빌딩숲에 추락하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허드슨강을 선택해야 했던 설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우리 또한 이와 유사한 대형참사의 아픔을 경험한 바 있다. 맡은 의무를 져버린 선장, 최선을 다하지 못한 구조 의무자들, 감독과 지휘에 소홀했던 위정자들까지… 영화 <설리>속 영웅들과는 너무도 상반된 인물들로 가득했던 우리의 현실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낳았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다행스럽게도 지난 2020.12.22.약칭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의 개정이 이루어진 바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1년 6개월 더 연장된 것이다. 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는 무엇보다 정부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가 바탕이 되어야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다고 한다. 모쪼록 앞으로 정부의 긴밀한 협조가 뒷받침되어 남은 기간 동안 세월호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엄정한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설리:허드슨강의 기적>감독 Clint Eastwood제공Warner Bros.Village Roadshow Pictures제작 Malpaso Productions,Flashlight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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