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링이나 엘든링이나 그런 엘든링 얘기 IV

Story Dies Twice ? 조지 R.R. 마틴과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교집합과 여집합

이현수 승인 2022.02.22 13:15 | 최종 수정 2022.02.22 13:21 의견 0

조지 R.R. 마틴 George R.R. Martin. 1948년생. 미국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어릴 때부터 만화, SF 소설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걸 자양분 삼아 독자 투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문학 박사 출신의 소설가가 아니라 이것저것 단편 소설, 칼럼, 시나리오 등등 생계형 글쓰기로 단련된 작가이다. SF 소설을 주로 썼으며 그의 초기 SF 소설들은 특유의 암울한 톤이 매력이다. 소설로 돈을 버는데 실패하고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 (1985–1989, 로드 설링 Rod Serling, 3시즌 65에피소드) 등의 TV 시리즈 시나리오를 쓰다가 판타지 소설을 하나 각 잡고 집필하는데 그게 바로 ‘얼음과 물의 노래 A Song of Ice and Fire’ (1991- )이다. 그렇다. 바로 그 유영한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 (2011-2019, 데이비드 베니오프 David Benioff, D.B. 와이즈 D.B. Weiss, 8시즌 73 에피소드)의 원작이다.

조지 R.R. 마틴
조지 R.R. 마틴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

음 뭔가 위화감이 들지 않나? 원작은 (1991- ). 그렇다 미완이다. 드라마는 (2011-2019). 완결이다. 원작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드라마가 끝났냐고? 원작이 출간되고 20년 지나 만들어진 드라마가 원작의 연재 속도를 따라잡고 만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드라마는 자체적으로 엔딩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왕좌의 게임’은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이런 의미로 명작 말이다.

그리고 ‘얼음과 불의 노래’의 팬들은 이 소설의 완결을 절대 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조지 R.R. 마틴의 소설 속 세계는 SF이건 판타지이건 항상 불안정하고 붕괴직전이다. 아니 이미 붕괴한 뒤의 아포칼립스를 그리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게임들 역시 붕괴 직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불이 꺼지기 직전 암흑이 다가오는 세계 ‘다크소울 Dark Souls’, 멸망의 징조는 보이지 않으나 현재 진행 중인 문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지난 세월 문명의 흔적과 폐허만 남아있는 세계에서 지나간 세월을 겨우 붙들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 ‘다크소울2 Dark Souls II’, 하늘에는 빛이 잃은 태양만 떠있고 그야말로 수명이 다한 세계의 모습이 어떠할지 세세하게 묘사한 ‘다크소울3 Dark Souls III’. 멸망한 고대왕국 위에 지어진 멸망 직전의 도시를 그린 ‘블러드본 Bloodborne’. 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결국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세세하게 묘사한 ‘세키로: 그림자는 두 번 죽는다. Sekiro: Shadow Dies Twice’. 그리고 세계의 붕괴는 개인이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세상이 무너지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의 놀라운 점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크소울3’의 엔딩을 살펴보자.

물론 스포일러이다.

‘다크소울3’의 엔딩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꺼져가는 불을 그냥 꺼지게 두고 (플레이어의 조력자 화방녀가 불을 거두는 의식을 시작한다.) 세상을 창세 이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불의 계승의 끝. 둘째, 불을 꺼지게 두나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불을 화방녀로부터 빼앗는다. 배신. 셋째, 꺼져가는 불을 주인공이 이어받아 다시 불을 지핀다. 불을 계승하는 자. 넷째, 불의 세계를 끝내고 어둠의 왕이 되어 어둠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의 왕이 된다. 불의 찬탈자. 여기서 정사로 인정되는 엔딩은 첫 번째 엔딩이다. 세상이 멸망하는데 절망은 아니라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불이 꺼지면 멸망하는 ‘다크소울’의 세계에서 수많은 장작의 왕들이 자신의 몸을 장작으로 불사르며 그 끝은 억지로 미뤄왔으나 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다. 꺼져야할 불은 꺼지게 놔두어야한다. 그래야 다음번에 다시 불이 피어오를 수 있으니. 모든 것은 더 큰 섭리에 따르는 법이다. 불이 꺼져야 하면 꺼질 것이고, 켜져야하면 다시 켜질 것이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잘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 ‘다크소울3’는 우리에게 걱정 말라고 말을 건넨다. 게임 내내 우리와 함께 했던 화방녀의 목소리를 통해. “제의 귀인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Ashen one, hearest thou my voice, still?”

많은 이야기들이 결말을 내는 데 힘들어한다. 누군가가 압도적으로 행복해지거나 압도적으로 불행해지는 비현실적인 결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원하는 바를 이루는 현실적인 결말. 어느 결말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풀어온 이야기의 주제와 분위기,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으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그럴듯한 결말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자신이 시작한 모든 것이 멸망을 향해 가는 이야기에 완벽한 결말을 남겨주었다. 조지 R.R. 마틴과는 다르게.

그럼 ‘엘든링’에서 이 두 이야기꾼이 어떻게 협력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매우 재미있는 방식의 협력이며 유사한 점과 다른 점이 확실한 두 작가의 이상적인 협력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지 R.R. 마틴의 광팬인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신작 ‘엘든링’의 집필을 그에게 맡기고 싶어한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일단 연락은 취해보는데 ... 어, 이게 되네. 제안을 받아들인 조지 R.R. 마틴. 평소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했으나 ‘반지의 제왕’을 넘어서기는커녕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 두려워 시작도 못하고 있던 그에게 또 다른 반지가 나오는 다크 판타지 집필 의뢰가 들어왔다니, 아마도 매우 신났을 것이다. 집필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조지 R.R 마틴은 게임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세계관과 인물들을 만들고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그걸 이어받아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으로. 그렇게 ‘틈새의 땅’과 ‘엘든링’, 성스러운 ‘황금나무’, ‘영웅들과 데미갓들’, ‘파쇄전쟁’, ‘엘든링의 파괴’ 그리고 왕이 되기 위해 틈새의 땅으로 모여드는 ‘빛바랜 자들’이 만들어졌다. 조지 R.R 마틴은 파괴 전 영광스러운 틈새의 땅의 모습을 그렸고,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멸망 후의 틈새의 따으이 모습을 그렸다. 조지 R.R. 마틴이 만든 영웅들과 영광스런 데미갓들은 모두 추락했고 기괴하게 비틀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조지 R.R 마틴이 게임 내에서 자신이 만든 데미갓들이 어떤식으로 뒤틀리게 변화했는지 보면 놀랄 것이라 이야기했다. 한쪽은 만들고 한쪽은 부순다. 어찌 보면 멸망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가장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싶다. 그것도 두 거장이 모여. ‘엘든링’은 이제 리뷰 엠바고 해제가 얼마 안 남았고, 발매가 코앞이다. 그리고 게임 역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계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틈새의 땅으로 떠납니다. 여러분도 빛바랜 자가 되어 자신만의 빌드를 만드세요.

(이미지출처=‘George R.R Martin - Portrait photoshoot at Worldcon 75, Helsinki, before the Hugo Awards: George R. R. Martin’, ‘Game of Thrones’ (HBO), ‘新 吼えろペン’ (Sunday GX Comics), 

(https://photos.google.com/share/AF1QipMJFRwgP8unYX_UlCDge7EA49GiU2_yewzdT4NACvaSZE-ovZM_K_qa2Z_Obv2FZA?pli=1&key=TUc0aEl4MGNxeWVhZnM5UUFVU0tqVmZ6bnBfaU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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