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무거나 올해 최고 그런 얘기

이현수 승인 2022.01.03 13:22 | 최종 수정 2022.01.03 13:31 의견 0

2021년도 이제 끝났군요. 군요. 그래서 아무거나 영화나 그런 얘기도 올해의 최고작품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한 주 날로 먹으려고 합니다.

1. 먼저 영화 칼럼이니만큼 올 해의 영화 MOTY. 수상작은 ...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2020, 소토자키 하루오 外崎春雄, 1시간 57분) <국내개봉 2021.01>

귀멸의 칼날
귀멸의 칼날

일단 올해는 영화에 있어 재앙의 해였다. 내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작은 만들어지지 않고 극장은 거의 폐업 상태였다. 라인업을 채우기 위해 창고 영화들이 개봉했고 OTT와 동시 공개라는 새로운 배급 방식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수가 적은만큼 좋은 영화가 많이 없었다. 그 중에 최고로 뽑은 작품은 바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 열차편’이다. 이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순수한 영화이다. 달리는 기차의 폭주 속에서 꿈을 이용한 플래시백을 사용하는 방법도 좋았고, 두 인물의 플래시백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주인공의 상처를 이용하여 새롭게 소개 받는 인물 염주 렌코쿠 교주로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 꽤 매끈하게 잘 다듬어져있다.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 혈귀, 그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 그럼에도 인간이기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의지. 이야기는 이렇게 세 파트로 진행된다.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혈귀에 대한 공포는 주인공 렌코쿠의 안티테제로 설정되어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건 이 영화의 잘못은 아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공포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은 원래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장편 영화 하나의 상영 시간을 모두 거기에 할애하여도 될까 말까한 어려운 과제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차선책을 택한다. 바로 피와 살육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이다. 인간의 몸이 혈귀의 몸에 비해 얼마나 잘 찢어지고 쉽게 손상되는지, 그 세세한 묘사를 통해 둘 사이의 대척점을 잘 표현하고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벽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해준다. 그래서 혈귀가 돼서 영원한 생명과 강인한 육체를 얻으라는 적 보스 아카자의 제안을 거절하는 렌코쿠의 모습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잘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렌코쿠는 인간으로 남기로 했고 인간이기에 약하지만 유대를 통해,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수많은 인간들의 의지가 결국 혈귀를 이길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진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각 개체의 강함이 아니라 모여서 만들어지는 유대감과 사회성으로 생물들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일본 만화들이 ‘인간 찬가’를 부르짖는다. 인간은 위대하다, 인간은 대단하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결국 개인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선에서 그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이 영화는 왜 인간이 위대한지를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작품답게 주인공 렌코쿠에게 한시도 애정을 잃지 않으며 정말 오랜만에 주인공이 진정으로 구원받는 아주 좋은 결말을 보여준다. 일본 만화의 클리셰 속에서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선별해 갈고 닦아 빛나게 만든 영리함이 돋보이는 스마트한 작품이다.

2. 올해의 게임 GOTY. 수상작은 ...

‘싸이코너츠2 Psychonauts 2’ (2021, 더블 파인 Double Fine,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 Xbox Game Studios, 팀 샤퍼 Tim Schafer, 잭 매클레돈 Zak McClendon)

AAA를 넘어서는 압도적 자본의 AAAA 게임이 없었던 올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임이 많았던 해였다. 일단 연례행사인 유비 소프트 Ubi Soft의 ‘어쌔신 크리드 Assassin’s Creed’와 ‘파크라이 Far Cry’ 신작들은 모두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다. 희대의 사기극이 되어버린 ‘사이버펑크 2077 Cyberpunk 2077’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연말에는 NFT니 메타버스니 하며 게임의 발전에는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이슈들이 게임판을 휘저었다. 그러나 시장을 독점하는 초 거대자본의 빈자리를 알찬 게임들이 많이 채워주었다. 엄청난 밀도의 완성도와 그보다 더 엄청난 시나리오를 선보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Resident Evil Village’ (2021, 캡콤 Capcom, 사토 모리마사 Sato Morimasa),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주며 플레이스테이션 5 Playstation 5 콘솔이 어떻게 다른 콘솔과 차별화 될 수 있는지, 문자 그대로,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 ‘라쳇 앤 클랭크: 리프트 아파트 Ratchet & Clank: Rift Apart’ (2021, 인섬니악 게임즈 Insomniac Games, SIE, 마커스 스미스 Marcus Smith, 마이크 달리 Mike Daly), 자신들이 완성시킨 몰입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다시 개조하여 대중적인 슈터 게임과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자 했던 대담한 실험이자 비디오 게임 내러티브의 혁신이 된 ‘데스루프 Deathloop’ (2021, 딩가 바카바Dinga Bakaba, 아케인 스튜디오 Arkane Studios,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Bethesda Softworks) 등등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본인의 선택은 ‘싸이코너츠 2’다. 왜냐고? 팀 샤퍼가 돌아왔잖아. ‘원숭이 섬의 비밀 The Secret of the Monkey Island’ (1990, 루카스 필름 게임즈 Lucas Film Games, 론 길버트 Ron Gilbert)에서 경력을 시작해 희대의 걸작이자 포인트 & 클릭 어드벤쳐의 황혼기를 장식한 ‘그림 판당고 Grim Fandango’ (1998, 루카스 아츠 Lucas Arts, 팀 샤퍼)를 만든 전설적인 게임 디자이너의 2005년 작품 ‘싸이코너츠 Psychonauts’ (2005, 더블 파인, 팀 샤퍼)의 16년 만의 속편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시작해 MS의 엑스박스 스튜디오의 투자까지 일구어내며 완성한 이 게임은 일단 팀 샤퍼의 날카로운 글의 품질만으로도 플레이할 가치가 충분하다.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원숭이 섬의 비밀’을 썼던 그 글 솜씨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성과 날카로운 유머감각은 나이를 먹고도 여전하다. 인간 (이 게임 등장인물들 ... 인간 맞지?)의 정신 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싸이코너츠 요원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인간의 정신 건강을 주제로 다루는 이 게임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다양한 정신세계를 그 배경으로 한다. ‘슈퍼 마리오 Super Mario’ 시리즈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 인물들의 개성을 잘 나타낸 플래포밍 스테이지, 쉴세 없이 펼쳐지는 말장난과 유머의 향연. 게임의 본질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싸이코너츠 2’는 그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게임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아 이제 론 길버트 형님도 걸작 하나 만드셔야죠?

싸이코너츠2
싸이코너츠2

p.s. 더블 파인이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PC 전 플랫폼으로 개발하다 엑스박스 스튜디오에 인수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엑스박스 로고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게임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엑스박스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로고를 볼 수 있는 게임은 ‘MLB 더 쇼 21 MLB The Show 21’ (2020, SIE 샌디에고 스튜디오 SIE San Diego Studio)이다.

p.s. 엄밀히 따지면 올 해 출시한 게임은 아니지만 2021년 확장팩 개념으로 풀 보이스 녹음과 새 스토리 추가 등으로 업그레이드 된 ‘디스코 엘리시움 파이널 컷 Disco Elysium – The Final Cut’ (2019, 2021, 자움 ZA/UM, 로베르토 쿠르비츠 Robert Kurvitz)을 선정 후보에 넣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 첫 출시를 2021년에 한 게임만을 대상으로 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기적같은 작품이고 이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마련하도록 하겠다.

스톤오션
스톤오션

p.s. 2021년 365일 중 가장 황홀했던 게이밍 순간은 ‘엘든링 Elden Ring’ (2022 예정, 반다이 남코,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네트워크 테스트에 참여했던 3시간이었다. 엄청난 물건이 나올 거라 예상을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작품이 나올 거 같다.

3. 올해의 TV 시리즈 SOTY. 수상작은 ...

‘스톤 오션: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ジョジョの奇妙な冒険 ストーンオーシャン’ (2021, 스즈키 켄이치 鈴木健一 외, 워너 브라더스 재팬 Waner Bros. Japan, 넷플릭스 Netflix, 시즌 1, 12 에피소드)

스톤오션
스톤오션

TV 시리즈라는 말도 이제는 구식 언어가 되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올해의 시리즈’ 라고 불러야 하나 ... 여하튼 이 스트리밍용 시리즈물은 현재 문화 콘텐츠 산업의 가장 핫한 포맷이며 세상의 모든 돈들이 다 여기로 쏠리고 있다. 걸작, 졸작, 범작, 미친 작품 등등 별의별 것이 다 만들어지고 있는 이 치열한 시장의 올해 승자는 ‘스톤 오션: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의 시즌1이다. 1868년 태어난 죠나단 죠스타부터 이어온 죠죠 가문의 혈통은 1992년 생인 6부의 주인공이자 (유일한 여자 죠죠) 쿠죠 죠린에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7부부터 세계는 일순하여 다시 1대 죠죠의 이야기가 리부트된다. 가장 실험적인 전개를 펼쳤으며 가장 잔인한 묘사가 많았던 파트인 만큼 어떤 식으로 영상화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안 그래도 기묘한 작품들 중 가장 기묘한 파트인 6부의 톤 앤 매너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많이 엿보이며 장황하고 방대하게 펼쳐진 설명들을 영상과 사운드로 깔끔하게 잘 축약한 연출력도 뛰어나다.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냥 가슴달린 남자들 같은 건 아무래도 작가가 나이 많은 남성이라 여성 서사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라 그런 것이라 추정되지만, 이정도로 이야기를 잘 만들면 남성/여성을 떠나 인간 서사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칭해주고 싶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인연이라는 주제를 별의별 괴상한 능력을 가진 스탠드들이 별의별 괴상한 방법으로 치고박고 싸우는 배틀물로 풀어나가는 솜씨로 원작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취하면서 단점은 최대한 가려주는 멋진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아직 시즌1까지 공개되었고 완결까지는 멀었지만, 벌써부터 희대의 걸작이 될 것이 충분한 7부 스틸 볼 런 Steel Ball Run을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p.s. ‘죠죠의 기묘한 모험’은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X발 BBC!!) ‘닥터 후 Doctor Who’, SF의 근간 ‘스타트렉 Star Trek’과 함께 마이너하지만 엄청난 팬덤을 가진 작품이다. 6부 ‘스톤오션’의 등장 인물 중 하나인 ‘안나수이’는 원작에서 처음 등장할 때는 여자였는데 중간에 남자로 바뀐다. 그러나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인데 여자가 남자로 바뀌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는 처음부터 남자로 나온다.

4. 올해의 추구 팀 FOTY. 수상팀은 ...

‘포항 스틸러스’

최근 10년간 K리그 판도는 다음과 같다.

포항이 이번에도 초저예산과 얕은 선수풀로 시즌을 시작한다. 그런데 유스에서 또 엄청난 신인들이 올라오고 가격 대비 엄청난 활약을 하는 용병들로 전반기를 어느 정도 버텨낸다. -> 이적시장이 열린다. 작년에 두각을 드러낸 신인들과 용병, 올해 두각을 드러낸 신인들과 용병을 전북과 서울이 싹쓸이해간다. -> 쭈글이가 된 포항은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코 찔찔 흘리고 다닌다. -> 우승이 목표인 울산이 여기저기 쥐터지고 다니는 포항을 만만하게 보고 덤빈다. -> 포항이 울산을 캐발라버린다. -> 울산이 우승 못하는 사이 전북이 우승하고 포항은 여전히 여기저기 쥐터지고 다닌다.

2013년 포항의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이때도 울산을 이기고 우승했다.) 이후 10년간 이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202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의 길목에서 울산을 줘팸한 뒤 광주와 대구, 인천 등등에게 돌아가며 처맞았고,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울산을 줘팸한 뒤 결승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국대나 다름 없는 알 힐랄에게 줘팸 당했다.

5. 올해의 프로레슬러 POTY. 수상자는 ...

MJF.풀 네임은 맥스웰 제이콥 프리드먼 Maxwell Jacob Friedmam. 북미 2위 단체인 AEW 소속. 뼛속까지 악연인 그는 자신의 기믹에 항상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위 말하는 ‘케이페이브’를 철저히 유지하는 선수이다.) 사인을 받으러 온 어린 소년의 얼굴 앞에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싸나이, ‘네가 부끄럽구나’라고 올린 엄마의 트윗에 ‘엿먹어요 엄마!’라고 답을 보내는 싸나이. 이 싸나이의 부모님은 아들의 AEW 데뷔전을 직접 보러오면서 ‘우리 아들 MJF는 구리다.’라는 피켓을 들고 오고, 인터뷰하면서 ‘아들이 승리하는 걸 보러오셨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요. 그 새끼 엉덩이 걷어차이는 걸 보러 왔어요. 그런 새끼를 세상에 내보내서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시는 노빠꾸 부모님이시다. 그렇다고 기믹만 뛰어난 싸나이인가하면 경기력도 준수하고(올드 스쿨 신봉자이기에 현대의 프로 레슬링 흐름에 조금 맞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케이페이브의 유지, 올드 스쿨 스타일에의 집착 등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다.), 최고의 마이크웍까지 갖춘 차세대 거물이다. 요즘 전설인 CM 펑크 CM PUNK와 대립을 이어가며 입담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CM 펑크를 마이크웍에서 압도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p.s. 고향인 롱 아일랜드에서 12월에 열린 AEW Dynamite에서는 악역임에도 엄청난 환호를 보여주는 고향 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 마음 여린 싸나이다.

6. 그리고 올해의 가장 고마운 사람은 ...

바로 독자 여러분들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미지 출처=‘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Ufotable, Aniplex), ‘Psychonauts 2’ (Double Fine, XBOX Game Studios), ‘ジョジョの奇妙な冒険 ストーンオーシャン’ (Warner Bros. Japan, Netflix), ‘Disco Elysium’ (ZA/UM), ‘Elden Ring Network Test Ver.’ (Bandai Namco), ‘포항 스틸러스’ (https://www.steelers.co.kr/), ‘MJF’ (https://www.allelitewrestling.com/))

저작권자 ⓒ OBSW,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