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44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막 타클라마칸 2

백민섭 승인 2021.12.06 13:15 | 최종 수정 2021.12.06 13:25 의견 0

그 옛날 수많은 낙타와 대상들이 목숨을 걸고 지나갔을 사막의 실크로드에는 바람이 만든 무수한 역사의 기억들을 품고 있는 사구(沙丘)들이 있다. 사구 속에 숨겨 왔던 수천 년의 타클라마칸사막의 역사를 파헤친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탐험가와 고고학자로 칭한 서양인들이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총과 칼을 앞장세운 그들은 곧바로 도둑놈들이 되었다. 모래더미에 묻혀 있는 수많은 역사와 진실을 파헤쳐 자기나라로 빼돌렸다. 유적지를 탐험하고 전문적으로 도굴해서 노략질한 대표적인 인물이 스웨덴 출신의 스벤 헤딘(Sven Hedin, 1865~1952)이다.

스벤 헤딘
스벤 헤딘

일각에서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중앙아시아의 고대 문명을 개척한 불후의 공적을 남겼다고 칭송한다. 중앙아시아 유물의 발견자이긴 하나 약탈자인 것도 사실 아닌가?

스벤 헤딘(Sven Hedin)은 1893년부터 1930년까지 네 번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탐사하던 중, 1899년 타클라마칸 북동쪽 뤄뿌포(羅布泊湖, -몽골어로는 '로프노르(Lop Nor)- 많은 강물이 흘러드는 호수‘라는 뜻)'로 옛날에는 호수였으나 물이 증발하여 사막이 됨) 사막을 건너다가 우연히 4세기쯤 역사에서 사라진 러우란(樓蘭) 왕국의 폐허를 발견한다. 목간(木簡-나무로 된 문서) 120편과 융단 조각 등을 챙겨 돌아간 이후 서양인들의 본격적인 노략질이 시작되었다.

둔황 막고굴의 존재를 알린 영국의 아우렐 스타인(Aurel Stein)은 막고굴의 불상과 7,000여 점의 유물을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갔고, 막고굴에서 벽화를 뜯어낸 독일의 알버트 르 콕(Albert Le Coq), 중국말을 할 수 있었던 폴 펠리오(Paul pelliot)는 가장 가치 있는 문헌과 필사본들을 무더기로 루브르박물관으로 가져갔다. 일본의 승려였던 오타니 탐험대까지 도적떼처럼 몰려와 유물을 훔쳐간 것이다.

스벤 헤딘은 이때 파헤쳐진 둔황의 막고굴 제17굴 장경동의 유물을 유럽의 학계에 알려 '돈황학(敦煌學)'을 정립하게 된다. 중앙아시아의 비밀을 알게 된 서양인들의 무자비한 탐험과 도굴이 사막 속에 묻혀 있던 신비한 오아시스 도시들을 발견하게 된다. 고창고성, 교하고성, 베제클리크석굴사원 등이 그것이다.

위로는 나는 새도 없고, 아래로는 달리는 짐승도 없다는 사막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이 무주공산으로 헤집고 다녔고 수천 년 간직했던 고대의 비밀들은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영국제국주의와 심지어 나치 독일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스벤 헤딘의 탐험 기록과 지도는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와 티베트를 집어삼키는 이정표가 되었다.

탐험하고 침략하고 정복하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정석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이방의 악마들(洋鬼子)‘이라 부르며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그 악마들이란 19세기 말부터 중국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실크로드의 유물들을 도둑질하여 자기나라로 반출한 스벤 헤딘, 알버트 르 콕, 폴 펠리오, 오타니 같은 탐험가와 고고학자를 칭했던 이들이다.

사막 초입에 들어서자 매표소가 있다. 강변에 서식하는 호양나무를 테마로 공원을 조성하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공원 안에는 갈대밭과 호수,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일주도로와 공원을 일주하는 관람용 협궤열차까지 갖춰 놓았다.

상류의 수자원 남용으로 하류의 호양림(胡楊林)과 초원이 말라죽어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는데도 매표소에서는 따박따박 입장료를 챙기고 있었다.

타리무호양림공원
타리무호양림공원
타리무호양림공원
타리무호양림공원

사막 속에서도 나무가 자라는 신기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타리무호양림(塔里木胡楊林) 지역이다. 최소 수 백 년은 살았음직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사막에 숲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경이감이 든다. 강변 사이로 길게 늘어선 샛노란 호양나무와 반영(反映)은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사막 여기저기 크고 작은 군락을 이룬 호양나무는 사막도 사람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듯하다. 사실 유전이 대대적으로 개발되면서 오아시스 도시도 발전하고 쿤룬(崑崙)산맥에서 흐르는 빙하수를 이용한 관개사업 덕으로 농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예전의 그 사막이 아니다. 중국정부의 의지만큼 끊임없이 황토색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다.

사막 가운데 호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타리무호양림공원(塔里木胡杨林公园)도 그 일환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흐르는 타리무강
타클라마칸 사막을 흐르는 타리무강

사막공로 동쪽 타리무강(Tarim River) 근처에 호양나무 숲이 있다. 건조하고 기온의 변화가 심한 곳은 물론 염분 농도가 높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호양나무를 ‘사막의 척추’라고 부른다. 호양나무는 지하 10미터까지 뿌리를 내리고 많은 수분을 저장할 수 있어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호양나무는 방사림 뿐 아니라 교량이나 제지와 가구를 만드는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위구르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이 나무를 투오커라커(托克拉克)라고 한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에 홀로 서 있는 호양나무,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풍경이 끈질긴 생명의 원형이라고 느끼는 것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위구르 사람들은 호양나무를,

살아서 천년(长着不死一千年), 죽어서 넘어지지 않고 천 년(死了不倒一千年)

땅에 쓰러져서 썩지 않고 천년을 견디는 나무(倒了不烂一千年) 라고 칭송하는 것이리라.

타클라마칸 사막에 자생하는 호양나무 군락지
타클라마칸 사막에 자생하는 호양나무 군락지

다시 사막공로로 나와 한동안 호양림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바인궈렁몽골자치주(巴音郭楞蒙古自治州)인 룬타이현(轮台县)에서 165번 지방도로인 제2사막공로(塔中公路)를 타고 민펑으로 향한다.

룬타이현 경계를 벗어나자 뜻밖에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이 나타난다. 타리무강이다. ‘타리무(塔里木)’가 위구르어로 '수자원이 풍부한'이라는 뜻이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타리무분지의 대부분이 바로 타클라마칸사막이고 그 머리 위에 강이 있다. 산에 쌓인 눈과 빙하가 녹아 골짜기마다 흩어진 물들이 다시 모여 만들어진 강이 사막의 젖줄이 된다.

강을 건너서 샤오탕공안파출소(肖塘派出所)를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사막에 진입하게 된다.

공로 입구에는 '塔里木沙漠公路(타리무사막공로)'라는 표지판과 함께 기념탑과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샤오탕(肖塘)에서 민펑(民豊)까지 오아시스의 북도와 남도를 이어주는 도로는,

1단계는 남쪽의 민펑(民豊)에서 북쪽으로는 쿠얼러(庫爾勒)과 쿠처(庫車) 사이에 있는 도시인 룬타이(輪台)까지로 1995년에 개통되었다. 2002년에는 2단계로 사막 가운데 있는 도시인 타쫑(塔中)에서 치에모(且末) 사이를 개통했다.

사막공로 입구 인공조림 지대가 시작되고 2차선 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사막이 시작된다.

폭이 10m인 도로로 넓지 않기 때문에 바람따라 움직이는 모래의 침입을 막는 것이 관건이다. 다양한 나무와 식물을 이용한 실험 끝에 도로 좌우에 네모꼴 형태로 방사림을 쌓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사림이 갈대였다.

사막을 달리다보면 가끔 빨간색 지붕에 하늘색 벽 칠을 한 건물을 볼 수 있다. 수정방(水井房)이라는 물관리사무소다.

한낮에 60도 이상을 웃돌고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이 척박한 땅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수정방(水井房)은 작은 묘목들을 길 양편에 5~10겹씩 심어놓은 방사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물탱크이자 염분이 있는 지하수를 담수로 만드는 시설이다. 보통 4~5km 간격으로 설치하고 수십 개의 호스로 연결해 하루 6시간 정도 사막에 물을 공급한다. 타클라마칸사막 전역에 이런 수정방이 대략 140여개 정도다. 대부분 부부들이 기거하면서 방풍림과 주변 도로를 관리하는데 대략 1~2년 정도 근무한다고 한다. 행복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자연과 인간의 눈물겨운 사투가 계속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모래사막에 진입하자 까만 아스팔트길이 끝 간 데를 모르게 뻗어 있는 모습은 자체가 장관이다.

섭씨 50도가 넘는 열기와 풀 한포기 보기 힘든 사막을 300km 쯤 더 달려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타쭝(塔中)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부터 커다란 식당들의 간판이 시선을 끈다. 주유소와 약국 심지어 KTV(중국식 단란주점)도 있다. 사막의 석유와 가스가 호황이기는 한 모양이다. 이곳은 석유개발기지가 가깝다. 속칭 돈이 도는 곳이어서인지 중국식당과 이슬람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마을 규모에 비해 식료품점이 많은 것은 외지에서 일을 찾아 온 노동자들의 많다는 뜻일 것이다.

휴게소 옆 고속도로에 위에 세워진 아치 현판에 써진 글이 인상적이다.

'죽음의 바다와 싸워 이기자'(征戰死亡之海)

'오직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只有荒凉的沙漠, 沒有荒凉的人生)

사막을 극복해야 될 대상이라 여기는 중국인의 의지가 발랄하다.

사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문구다.

출발하기 전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 중국 대륙의 오지를 다니려면 주의할 것이 몇 개있다. 화장실 문제는 대충 해결한다고 해도 특히 차량 주유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주유소 간격이 수백 킬로미터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한다. 주유소가 보이면 무조건 가득 채우는 것이 기본이다.

고속도로 면해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운 후 식당을 찾는다. 주유소와 붙어 있어 선택의 여지도 없다. 사막을 배경으로 '사막 스타일의 이슬람식당'이라는 뜻의 대막풍정원청진찬청(大漠风情园清真餐厅)이라는 이름만 거창한 식당이다.

메뉴라야 대부분 국수 종류다. 요기만 할 작정이었지만 그래도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면 단연코 '낭'과 '빤미옌'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빤미옌을 거를 수는 없는 일.

이탈리아의 파스타의 원조라는 빤미옌(拌麵-장이나 양념에 비벼 먹는 국수)을 시켰다. 파스타의 원조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 설과 이견이 있지만 국수의 역사로 봐서는 가능성이 무척 높다. 우리네 비빔국수격인 빤미옌과 곁들이로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붙여 구운 빵인 낭을 주문한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먹어봤던 빤미엔은 변함없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빤미엔의 맛의 비밀은,

첫째는 두툼한 수타면의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면발이요.

두 번째는 양고기와 토마토, 피망 등으로 만든 소스에 있다. 중국 특유의 향신료가 없는 소스라 더욱 정겹다. 마치 스파게티처럼 원하는 만큼 면 위에 뿌려 먹으면 된다. 코와 혀에 전혀 부담이 없어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사막을 바라보면서 먹는 무슬림 음식의 한 끼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맛있는 추억이 된다.

사막공로의 중간쯤에 있는 타쭝(塔中)마을은 지도상으로는 커다란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 곳으로 제1사막공로(165번 지방도로, 민펑 방향)와 233번 지방도로(체모 방향)가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갈림길에서 서쪽 방향의 민펑을 향해 200km를 달려서 서역남로 길이기도 한 315번 국도로 갈아탄 후 20여 분정도 가면 민펑현(民丰县)에 도착한다.

제1사막공로를 통해 타클라마칸사막을 종단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초겨울의 날씨조차 뜨겁고 따갑지만 바람이 잔잔하여 그 무섭다는 황사의 기원인 모래폭풍을 만날 수 없었다. 사막을 거의 벗어날 때쯤 비겁하지만 한번쯤 맞아보고 싶은 위험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모래언덕은 바다처럼 물결이 되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황홀경이다. 고개를 돌려 황홀경 속에 숨어 있는 나의 흔적을 되짚어 보았으나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사막은 여전히 외로움을 타고 있다.

호탄(Hotan, 和田)으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호탄사는 315번 국도
호탄사는 315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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