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과 할로윈

이현수 승인 2021.10.22 11:02 | 최종 수정 2021.10.22 11:07 의견 0
‘할로윈Halloween’ (1978, 존 카펜터 John Carpenter, 1시간 31분).
‘할로윈Halloween’ (1978, 존 카펜터 John Carpenter, 1시간 31분).

저예산 영화의 제왕 존 카펜터가 만든 살인마-스토킹 영화. ‘할로윈’ 프랜차이즈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이 오리지널을 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이 오리지널은 어떤 영화인가? 존 카펜터는 뛰어난 감독이지만 뛰어난 제작자이기도 하다. 엄청난 기획력을 가진 인물이고 저예산과 고예산을 잘 구별하여 영화를 제작하고 지금 만드는 영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관객들의 니즈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며, 그렇기에 온갖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도 거의 대부분 흥행시킨 놀라운 인물이다. 저예산 영화의 제왕은 로저 코만 Roger Corman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영화의 완성도와 제작비 대비 흥행, 후배 영화인들에 대한 영향력 등을 생각한다면 진짜 제왕 자리는 존 카펜터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말하자. ‘할로윈’은 (거의) 최초의 시즌(할로윈 시즌) 기획영화이고, 영화의 모든 것이 그 역할에 충실한 영화이며, 연쇄 살인마 영화의 아버지이다. 자, 할로윈 시즌이 왔다. 사람들이 밤새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설탕에 취했고 어른들은 술에 취했다. 뭔가 더 놀거리가 필요하다. 영화를 볼까? 아니 영화 보다가 졸 거 같은데. 그럼 공포 영화는? 옛날 공포 영화들 좋잖아. 그냥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고 술이나 먹자고. 아니 그래도 뭐 신작 없나? 존 카펜터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만든 영화가 바로 ‘할로윈’이다.

스토리? 없다.

캐릭터? 엄청 강하다. 살인마쪽에 마이클 마이어스 Michael Myers라는 캐릭터를, 우리편에 최고로 핫한 제이미 리 커티스 Jamie Lee Curtis를 배치한다. 식상하지만 마이클 마이어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가면 쓴 살인마의 아버지, 마이클 마이어스. 머릿속에는 ‘찾는다. 죽인다. 다음 찾는다. 죽인다.’ 밖에 없는 순수 살인마. 광기도 복잡한 심리도 없이 마치 살인 AI처럼 죽이는 것에만 특화된 인물. 제이슨 부히스Jason Voorhees의 아버지이고 터미네이터Terminator의 선조. 이 캐릭터에 대한 반향으로 프레디 크루거 Freddy Krueger가 나왔다.

존 카펜터는 영화도 잘 만들지만 영화 감독 그 이상으로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 음악가, 촬영 감독, 편집가, 미술 감독이다. (연기도 잘한다.) 그야말로 예전에 말하던 완전 작가에 가까운 감독이다.

자, 그럼 ‘할로윈’은 도대체 어떤 전략을 가진 영화인가? 앞서 이 영화는 하이 컨셉 기획 영활고 말했다. 할로윈 시즌 영화. 이 영화는 세 가지의 기둥 위에 서있다. 일, 끝내주는 디자인의 살인마, 이, 제이미 리 커티스, 삼, 끝내주는 음악. 중독적인 짧은 멜로디의 이 음악은 ‘할로윈’의 상징이자 영화를 하드캐리하는 요소이다. (존 카펜터가 작곡했고 연주했다.) 이 음악 전략은 ‘서스페리아 Suspiria’ (1977,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1시간 39분)에서 프로그레시브 밴드 고블린 Goblin이 만든 음악의 운영 방법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자, 여기서 오해 하나 풀고 가자. 마이클 마이어스는 무분별한 학살자가 아니다. 그는 목표가 확실하다. 제이미 리 커티스를 죽이는 것.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인간들을 그냥 옆으로 튀워놓을 뿐이다. 식칼을 사용해서. 후발 주자들과 차이되는 요소가 바로 이 부분이다. 시작부터 저 살인마는 목표가 세팅되어 있고 결말은 살인마와 목표물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그 중간은? 그냥 보다말다 술도 먹고, 애인이랑 뽀뽀도 하고, 땅땅땅땅 땅땅땅 그 유명한 음악이 나오면 화면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할로윈’은 마이클 마이어스의 추적, 제이미 리 커티스의 불안한 기다림 이 두가지에 관한 영화이다. 서로 언제 칠지, 언제 올지 간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장렌즈를 이용한 훔쳐보는 샷, 핸드헬드 카메라 무빙을 통한 미행 샷, 고립된 곳에서 한정된 시야로 밖을 살피는 답답한 샷, 이 세가지 샷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1시간 30분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존 카펜터가 영화를 잘 만든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샷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은 몰랐다. 아니 ‘커트 러셀의 코브라 24시 Escape from New York’ (1981, 1시간 39분)나 ‘괴물 The Thing’ (1982, 1시간 49분)도 좋지만 이렇게 미니멀하게 쫄깃쫄깃한 영화도 좀 더 만들어주시지 ...

‘할로윈’은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운명답게 속편이 계속 만들어지며 이야기에 살이 붙고 캐릭터의 전사가 만들어지고 심지어 마이클 마이어스 없는 속편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엄청나게 부풀었다가 폭발햇 사라지고 다시 리부트되고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다시 슬쩍 얼굴을 내밀면서 2021년까지도 속편이 만들어지고 있다.

2007년, 엄청난 야심으로 ‘할로윈’이 리부트된다.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 Halloween’ (2007, 롭 좀비 Rob Zombie, 1시간 49분) 록 가수에서 공포 영화(특히 살육 영화) 감독이 된 롭 좀비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는데 ... 롭 좀비는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The Devil’s Rejects’ (2005, 1시간 47분)도 그렇고 ...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2 The Texas Chainsaw Massacre 2’ (1986, 토비 후퍼 Tobe Hooper, 1시간 41분)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하고 ... 여하튼, 마이클 마이어스가 가족 멜로에 들어가면서 ‘할로윈’의 세계가 더 풍성해지기는 했으나 더 매력적이지는 못해졌다. 그러다가 오리지널 ‘할로윈’의 계승자가 나타나니 ...

바로 ‘할로윈 Halloween’ (2018, 데이빗 고든 그린 David Gordon Green, 1시간 46분)이다. 원작이 가졌던 강박적인 추적, 훔쳐보기, 불안의 요소는 다 빠지고 웬 밀리터리 마니아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오는 지루한 영화이지만 ... 마지막에 ‘Got ya!’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래, ‘할로윈’은 바로 이 마지막 대결에 관한 영화라고.

여하튼 해피 할로윈.

(이미지 출처=‘Halloween’ (Compass International Pictures ), ‘Halloween’ (Dimension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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