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향은 무한 열차로

이현수 승인 2021.09.17 11:31 | 최종 수정 2021.09.17 11:42 의견 0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2020, 소토자키 하루오外崎春雄, 1시간 57분)입니다. ‘귀멸의 칼날’은 아시다시피 현재 가장 핫한 작품이며, 일본 출판 만화 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고, 오늘 이야기할 작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이하 ‘무한열차’)는 일본 역대 박스 오피스 1위를 찍었으며, 10일만에 100억엔 흥행 돌파로 이 부분 최단기간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원작은 주간 소년 점프 연재작인 ‘귀멸의 칼날 鬼滅の刃’ (2016 ~ 2020, 고토케 코요하루吾峠呼世晴)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2019 ~ , 1시즌 26에피소드)의 시즌1 이후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시즌2가 ‘무한열차’에서 이어지게 될 예정이다. 일본 친구들은 TV 시리즈를 장편 영화로 이어가는 일이 많은데 (예를 들어 TV 시리즈로 방영하다 마지막 두 에피소드를 극장 장편 영화로 만든 ‘노다메 칸타빌레のだめカンタービレ’라던가.) 어째든,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이 작품은 ‘기차 영화’이다. 오늘은 ‘무한 열차’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이 어떻게 기차 영화와 만나는지, 그리고 다른 기차영화/소설/게임과 어느 방식으로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차 영화’는 기차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영화로 이런 서브 장르가 진짜 있냐고 하면, 아니, ‘무한 열차’ 썰을 풀어보려고 내가 만든 말이다. 일단 TV 시리즈 ‘귀멸의 칼날’부터 이야기해보자. 이전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ジョジョの奇妙な冒険’을 다룬 칼럼에서 언급했듯(‘최고로 HIGH한 기분이다!’ 참조. 얼마 전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 8부 ‘죠죠리온’이 완결되었고 9부 ‘죠죠랜드’의 연재 발표가 났습니다. 아라키 대장님 만수무강하십시요!) ‘귀멸의 칼날’ 이야기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부터 먹히는 쩌는 이야기가 그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다시 소개되면서 새로운 세대에게도 먹혔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보통의 일본 만화와는 다르게 빠른 전개, 선이 굵은 캐릭터들,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들이 유행인 요즘 선과 악이 확실한 올드 타임 캐릭터들, 처음부터 제시된 확실한 목적, 목적을 이루자 더 질질 끌지 않고 칼같이 종결하면서 이야기의 힘과 캐릭터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완결을 맞을 수 있었다.

‘귀멸의 칼날’의 두 주인공 탄지로와 네즈코. 혈귀(오니 – 작중 등장하는 식인귀)에게 온 가족이 몰살 당하고 혈귀를 잡는 귀살대가 된 탄지로. 혈귀에게 물려 혈귀가 되었으니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 네즈코. 탄지로의 목적은 혈귀 우두머리 무잔을 물리치고 네즈코를 인간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탄지로는 오랜만에 등장한 가장 이상적인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올곧은 성격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성장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시련도 극복해낸다. 탄지로는 이야기를 거치며 크게 성장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캐릭터 본모습을 잃지 않고 마지막화를 맞이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또 다른 메가히트작 ‘원피스ワンピース’ (1997 ~, 오다 에이치로尾田栄一郎)와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 (1984 ~ 1995, 이후 속편 연재,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외)을 통해 알아보자.

‘원피스’의 주인공 몽키.D.루피,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 이들 역시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주인공으로 작품 전체를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IP가 거대해지며 애니메이션 시리즈, 매년 나오는 장편 스핀오프 영화, 게임, 캐릭터 상품, 작품의 연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어린 독자층의 유입을 위해 캐릭터는 더 단순해지고 평면적으로 변한다. 거대 IP의 간판인 이들은 이제 작품 속 캐릭터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뜨거우면서 냉철하던 이상적인 리더상이었던 초중반의 루피, 연재를 마치는 순간까지 침착하고 머리회전이 빠르고 주변 인물들을 소중히 여기던 손오공, 이들은 최근 연재와 속편 연재 속에서 모두 무뇌아가 되어버렸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연재만화에서 캐릭터를 온전하게 살려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하튼,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만들어야하는 ‘귀멸의 칼날’은 왜 갑자기 장편 영화 ‘무한열차’를 다음 프로젝트로 선택했는가? 그건 ‘무한열차’의 주인공은 탄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한열차’의 주인공은 바로 이 친구,

귀살대의 간부 ‘주柱’ 중의 한 명인 염주 렌코쿠 교쥬로이다. 생긴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 친구는 시즌1의 탄지로를 시즌2의 탄지로로 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귀멸의 칼날’은 시즌1과 시즌2 사이에 이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영화를 하나 만들어 그에게 헌사한 것이다. 비록 시즌2에는 등장하지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며 작품의 주제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렌코쿠는 시즌1에서 첫등장 때 저 범상치 않은 외모에 뒤지지 않는 캐또라이로 묘사된다. 무한열차라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진행되는 ‘무한열차’의 초반에도 그는 여전히 캐또라이로 묘사된다. 기차영화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기차라는 밀실 안에서 진행되며 우리는 현재 일어나는 사건만을 목격하게 된다. 즉 플래시백으로 기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하면 달리는 밀실이라는 배경 세팅이 무너지니까. 그럼 ‘무한열차’는 저 캐또라이 렌코쿠를 어떻게 캐멋진 진짜 싸나이이자 진짜 어른으로 변모시키는가?

바로 ‘꿈’을 무기로 다루는 혈귀이자 이 작품의 서브 보스 엔무를 통해서이다. 이 친구가 열차 안의 모두를 잠들게하고 꿈속을 헤매게 만든다. (어 그거 완전 ‘인셉션’ ... ?) 열차 안의 모두가 의식을 잃고 마치 달리는 관처럼 되어버린 열차의 이미지는 꽤 섬뜩하다. 어째든, 이 꿈 속에서 우리는 렌코쿠의 과거를 볼 수 있게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과거 속 그의 첫 등장은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당연한 의문을 품게 된다. 무엇이 저 인물을 저렇게 바꾸어 놓았는가? 영화는 렌코쿠의 과거를 한 번에 제시하지 않고 조각조각내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탄지로의 과거와 교차편집함으로써 렌코쿠와 탄지로를 서서히 일치시키는 작업을 한다.

기차는 그 멈출 수 없는 전진의 이미지 때문에 손 쓸 수 없는 운명적인 살인 사건과 끝을 알 수 없는 인간 욕망의 폭주의 모티브로 자주 사용되고는 한다. 위부터 열차 안 연쇄 살인을 다룬 ‘로코 모티브 Loco Motive’ (2020, Robust Games), 이 장르의 선조격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1시간 54분), ‘닥터 후 Doctor Who 시즌 8 에피소드 8 Mummy on the Orient Express’ (2014, 폴 윌름허스트 Paul Wilmshurst, 46분)

그리고 저 미친 질주가 멈추면 기차 밖에서는 그동안 질주한 거리만큼 쌓인 모든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의 결말, 충격적일 정도로 대비되는 두 개의 샷. 마치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승객들의 와이드 롱샷 뒤에 붙는 탐정 포와르의 무기력한 클로즈업. 진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는 결국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

‘닥터 후 Mummy on the Orient Express’의 결론. 죽지 못하고 오리엔트 특급을 헤매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던 미라의 정체가 드러난다. 서글픈 사연을 가진 미라, 충실한 군인이었던 그가 드디어 전쟁엣 해방되어 제대 명령을 받고 경례를 올린다.

‘무한열차’의 마지막.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렌코쿠는 훌륭하게 시즌2 시작의 기반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시즌2의 탄지로는 시즌1의 탄지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지킨다.’는 ‘귀멸의 칼날’의 주제를 더 강하게 다지고 가는 순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한 많고 사연 많은 인간 렌코쿠에게 구원을 내려주며 막을 내린다.

p.s. 물론 세상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죠죠이 기묘한 모험’ 5부 ‘황금의 바람 Golden Wind’의 에피소드 16에도 훌륭한 기차 영화 장르 이야기가 들어있다. 여기서도 폭주-폭주 후 멈춤-멈춘 후의 감정 폭발의 수순을 충실히 따른다.

(이미지 출처=‘귀멸의 칼날鬼滅の刃’ (Ufotable, Aniplex),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Ufotable, Aniplex), ‘원피스ワンピース’ (Toei, Fuji TV),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 (Toei), ‘로코 모티브 Loco Motive’ (Robust Games),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Twentieth Century Fox), ‘닥터 후 Doctor Who’ (BBC). ‘죠죠의 기묘한 모험 황금의 바람 ジョジョの奇妙な冒険 黄金の風’ (David Pictures,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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