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7편] 6700m 지샨따빤(界山达坂)의 비밀

백민섭 승인 2021.08.31 15:53 | 최종 수정 2021.08.31 15:58 의견 0

구게왕국의 거대한 토림계곡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신짱꽁루를 타고 다시 아리(阿里)의 가얼현(噶尔县)을 지나 티베트 최서단 도시 르투(日土)로 갈 계획이다.

아리(阿里)는 깡탕(岡塘)고원에 속한 지역으로, 티베트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나 중국내 영토 중 가장 황폐한 지대로 유명한 곳이다.

2010년 1월 비행장이 개통되면서 도로건설도 함께 이루어져 가장 황폐한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로써 고산과 사막으로 뒤덮인 북서쪽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와 접경지대를 빼고는 사실상 티베트 거의 전 지역이 거미줄 같은 교통망으로 엮이게 됐다.

219번 도로 근처에 위치한 아리쿤사비행장(阿里昆莎机场, Ngari Kunsha Airport)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50킬로미터 더 가면 아리의 중심인 아리진(阿里鎭- 獅泉河라고도 한다)에 닿는다. 스췐하(獅泉河)변에 위치한 60여 년 된 군사도시이자 신짱꽁루상의 교통 중심지이다.

서쪽으로는 신장(新疆), 남쪽으로는 짜다(札達)와 푸란(普蘭), 동쪽으로 라싸(拉薩)와 연결되어 있어 여행의 중요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생각 이상으로 현대화가 된 도시는 결코 작지 않다. 시내 중심가에는 많은 식당과 대형 상점이 있고, 각 지역에서 집하된 농산물 등 물자도 풍부하다. 식당은 대부분 쓰촨(四川)식이지만 위구르 음식도 가능하다.

큰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장사람과 티베트사람들이 어울리는 도시지만 외지 여행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곳이다. 허가를 받는 일도 쉽지 않고,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리를 지나 신장 방향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넓고 평탄하다. 주변의 생김새와 길이 비슷해 이곳이 티베트인지 신장 지역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끝없이 이어진 커다란 고압선 전신주가 동행할 뿐이다. 이 전신주를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하는 바람을 안고 달린다.

르투(日土, Rutok)에 이르자 유명한 판공쵸(班公湖, 또는 Pangong Tso-'거대한 함몰지'라는 뜻)가 보인다. ‘태양의 땅’이란 이름에 걸맞게 고원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은 르투(日土)를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광야로 만들었다.

정치적으로도 첨예한 중국과 인도의 국경지대에 선물처럼 자리한 판공쵸.

판공쵸(班公湖)
판공쵸(班公湖)

고립무원의 황토고원에서 만난 이 호수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2011년에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인도영화 <세 얼간이(3 idiots, 2009)> 때문이다. 세 명의 천재 공학도가 펼치는 유쾌한 코미디의 마지막 부분을 인도 쪽 판공쵸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세 얼간이(3 idiots, 2009)' 영화 포스터와 판공쵸를 배경으로 한 장면
'세 얼간이(3 idiots, 2009)' 영화 포스터와 판공쵸를 배경으로 한 장면

현실에서도 판공쵸는, 황토와 설산을 주위에 거느리고 푸른 하늘을 품었다. 호수주변은 수초가 풍성하고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야생마 무리, 호수 가운데 섬과 어우러진 철새들의 모습까지 너무도 평화스럽다.

미려(美麗)한 호수풍경과 어울려 자연은 더욱 신비롭다.

호수는 중국과 인도에 걸쳐 있어서 배를 타면 인도의 레(Leh-라다크(Ladakh)의 주도)까지 갈 수가 있다.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왕래는 물론, 티베트사람들이 라다크(Ladakh-과거 히말라야 왕국의 수도로 지금은 티베트망명정부와 난민촌이 있는 곳)로 가는 망명의 길이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군의 충돌이 잦은 민감한 지역으로 국경분쟁이 벌어지자 1962년 국경이 폐쇄됐다.

이후 중국 신장자치구 카슈가르(Kashgar, 또는 카시 喀什)와 티베트, 인도 캐시미르를 연결했던 고대 교역로도 폐쇄됐다. 코발트빛 호수는 수천 년의 신비한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채 깊은 상념에 빠진 듯 적막하다.

신짱꽁루는 1962년 중국과 인도 간 국경 분쟁 때 개설된 도로로 군사적으로 중요하다. 파키스탄까지 3개국의 국경이 면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영유권과 종교 갈등으로 인한 충돌이 빈번한 지역이자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아직도 국경선이 확정되지 않아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2017년, 2018년에 이어 2020년 6월에도 라다크 지역에 인접한 갈완계곡에서 양국군이 드잡이를 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 유혈충돌이 있었다.

이 지역은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의 도로가 연결 된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중국과 인도가 서로의 굴기(崛起)가 시작 되면서 분쟁지역을 두고 더 강력하게 부딪히고 있는 양상이다.

오랫동안 인도의 경제 파트너였던 네팔을 두고 각축을 벌이다 네팔이 중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양국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터라 캐시미르(Kashimir)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좁고 기다랗게 형성된 호수는 동서길이가 약 150km, 남북의 평균 너비는 2~5km에 이른다. 제일 좁은 곳은 5m도 안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호수면적의 3분의 2가량 되는 중국 쪽 호수는 대부분 담수호로 물고기가 살 수 있지만 인도 캐시미르 지역의 호수는 염호(鹽湖)라는 점이다.

호수를 벗어나면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지는데 르투(日土, Rutok)를 지나자 한동안 내리막길 협곡이다.

거대한 협곡 사이를 외줄타기 하듯 고비탄(Gobitan-모래와 돌들이 섞인 척박하고 못 쓰는 산과 사막의 땅)이라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둬마(多瑪)다.

둬마는 해발 5000미터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신짱꽁루를 달리는 기사들이 꼭 하룻밤을 묵어가는 티베트의 마지막 마을이자 예청에서 티베트로 들어오는 첫 마을이다.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는, 정말 집 몇 채 안 되는 길가의 휴게소 같은 곳이다.

식당을 겸한 초대소에 도착했지만 마치 아편쟁이 소굴 같은 움막에서 잠을 청하기는 쉽지 않았다. 동행했던 중국 감독관의 주선으로 생각지도 않게 중국인민해방군 막사를 사용하기로 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티베트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려니 했다. 부대 입구에서 몇 가지 보안검사를 한 후 막사를 배정 받았다. 낯설음도 잠시 중국인민해방군 막사는 여느 모텔급 초대소보다도 훨씬 깨끗하고 난방도 신식 라디에이터로 되어 있다.

그때서야 송곳 하나 박기 힘들 정도로 총총한 밤하늘의 별이 눈에 든다. 쏟아질 듯한 별들이 여기저기서 총총함을 자랑하며 손짓하고 있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온 일행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별구경 삼매경이다. 해발고도 5000미터에서 만난 칭짱고원의 별들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 더해져 우리의 밤은 잠을 자지 않아도 꿈이었다. 티베트의 겨울 밤하늘이란... 칭짱고원에 오면 꼭 밤하늘을 보시라.

다음날 새벽.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 지샨따빤(界山达坂)을 넘어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가기 위해 서두른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탐사대 지프차량의 스타트 모터가 푸드덕 거리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휘발유 차량을 제외한 디젤 차량들은 혹한에 견딜 수 있는 연료를 넣어 뒀어야 했다. 어제 아리를 출발하면서 –20도나, -30도짜리 연료를 구할 수 없어서 0도용 기름을 넣은 것이 사달이 난 것이다. 간밤에 이 지역은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

중국은 넓고 기후조건이 다양하다 보니 연료를 구분해서 팔고 있다. 휘발유는 90, 93, 97(옥탄가를 표시한 것으로 수치로 높을수록 고급연료)로 구분하고 디젤은 0, -10, -20, -30, 그리고 특수하게 –35도 있다.

이는 숫자에 맞는 기온까지 얼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연료를 나타내는 것으로 탐사대 차량에는 최소한 –20을 주유했어야 했다.

엔진룸과 연료통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녹여도 보고, 얼은 기름을 녹이려고 차체를 흔들어도 보고... 별무소용이다. 일정을 늦춰서 해가 뜬 아침이 되어서야 보급 장교가 민가에서 구해 준 기름을 추가로 넣은 후에야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지체된 시간으로 마음도 바쁘고 일정도 촘촘해진다.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인민해방군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야 길을 나선다.

둬마를 빠져나와 신장(新疆)과 티베트(西藏)를 잇는 '신짱꽁루(新藏公路)'를 탄다.

신짱꽁루(新藏公路)인 219번 국도는 세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도로다. 이 일대는 높이만큼 공기가 희박하다. 기압도 현저히 떨어져 지나는 여행자나 운전자들이 대부분 고소 증세를 앓게 된다. 탐사대가 넘으려는 고개 지샨따빤(界山达坂-쿤룬(崑崙)산맥을 넘는 고개)은 해발 6,700미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고산병(高山病)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지옥길이 아닐 수 없다. 예청 가는 길이 정말 장난 아니게 됐다.

티베트 라싸에서 신장(新疆) 예청(葉城)까지는 약 2,500 여 킬로미터, 평균 해발고도는 자그마치 4,500m가 넘는다. 219번 도로 위는 산소량도 적고 기온도 낮아 초겨울에 고개를 넘고자하는 우리 일행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둬마에서 예청까지는 쿤룬(崑崙)산맥의 설산을 대략 8개 정도는 넘어야 하는 고행길이다. 신짱꽁루의 보수와 통행을 담당하는 중국 무장경찰 교통대가 ‘생명 금지 구역 중의 금지 구역’이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둬마에서 약 110km 쯤, 거리는 짧지만 수많은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4시간여를 달려서야 신짱꽁루의 가장 높은 고개인 지샨따판(界山达坂)을 오른다.

산마루에는 <지샨따빤 해발 6700m> 표지석이 있는데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를 넘는다는 기대가 한껏 올라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가보니 고도계는 한참 낮은 5200미터대로 표시하고 있어서 길을 잘못 들어 선줄 알고 지샨따판을 찾느라 한참을 맴돌았다. 그러나 주변에 해발 6700미터의 고개는 없었다.

왜 지샨따판의 높이는 실제와 다른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70년대 측량했을 당시의 오류라는 해석과, ‘해발 6700미터’는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느낄 수 있는 높이로, 영토분쟁이 잦은 이곳에 티베트로 가는 길을 내어 주기 싫어했을 중국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설이다.

역사적으로는,

'1950년 8월 1일, 신장위구르자치구 2군단의 독립 기병부대인 리디산(Li Di-san)이 이끄는 기병대가 아리(Ali)고원에 진입하여 세계의 지붕위에 붉은 깃발을 꽂았다'

라는 기록이 있듯이 이 지역은 수백 년 동안 독립하려는 위구르족과 지키려는 중국의 치열한 영토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이 논란은 2009년에 지샨따빤의 높이를 5248미터로 수정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2005년7월1일 새로 세운 구계비 앞면에는 <海拔 5248M>, 뒷면에는 <海拔 6700M>로 표기하고 있다. 왜 그런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지샨따판(界山达坂) 구계비 앞면
지샨따판(界山达坂) 구계비 앞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를 차를 가지고 넘는 신기원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에 미친 듯 일대의 고개란 고개는 다 뒤지고 다녔지만 5300미터를 넘는 고개를 찾지 못했다. 하긴 그동안 이 고개를 통해 티베트와 신장을 오갔을 수많은 트럭기사와 여행자들을 생각하면 애초부터 기록은 부질없는 일인 셈이다. 모두 씁쓸하게 웃고 만다. 지도와 신문기사 등 중국발 자료만 믿고 황당한 꿈을 꾸었던 지샨따빤 헤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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