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5편] 춤추는 황토 협곡 짜다토림(札達土林)

백민섭 승인 2021.08.17 12:48 | 최종 수정 2021.08.17 12:55 의견 0
G-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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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방향은 평탄한 초원을 달리는 길인데 반해 짜다 방향은 첩첩이 겹친 산들이 바리케이트 같다.

5천미터급 산을 도대체 몇 개나 오르고 내렸는지 셀 수도 없다. 하늘 끝까지 왔다 싶다가도 다시 초원을 지나고 산굽이를 돌고 돌아 고개를 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짜다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위험도 훨씬 높아졌다. 천애낭떠러지를 끼고 만든 고개 길이 왜 그리도 끝이 없던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선택한 지름길은, 주먹만한 돌들이 널린 비포장 길로 추락위험과 차량파손의 이중고를 감내해야하는 코스.

몇 차례의 타이어 펑크와 자잘한 사고를 이겨내며 짜다로 향한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비포장 산길을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씩 달리는 우리들도 어느덧 지쳐간다.

앞차가 뿜어내는 먼지 사이로 멀리 몇 개의 불빛이 별처럼 보일 때 어둠과 함께 짜다에 도착한다.

햇살을 받은 흙산이 파도처럼 첩첩히 밀려드는 환상 같은 짜다의 아침을 맞는다.

지옥 같던 어젯밤의 기억은 토림이 펼치는 파노라마에 일순 사라진다.

그렇다. 이런 환상을 보러 불원천리한 것이 아닌가.

짜다현
짜다현

전설의 왕국 구게왕국과 토림(土林)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짜다(札達)현.

수트레지(Sutrej, 또는 象泉河-서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해에 이른다) 강변에 위치한 짜다현(札達縣)은 아리(阿里, Ali)지구에서는 가장 낮은 마을로 해발 고도가 약 3500미터 정도.

겨울 입구에 들어선 수트레지강은 거의 말라 깊은 계곡이 되었다. 짙은 회색의 진흙 절벽이 된 강변은 마치 사열을 준비하는 병사들 같기도 하고 각기 다른 수만의 불상처럼 보이기도 싶다. 밤늦게 사투를 벌여 들어 온 터라 칠흑 같은 어둠이 전부였던 것 같은 짜다가, 새벽 어스름에 요술을 부리듯 그 거대한 웅자를 드러낸 것이다. 그 유명한 ‘짜다토림(札達土林)’이다.

지난밤 정말 죽을힘을 다하고서야 짜다로 들어 올 수 있었다. 가장 난코스는 악명 높은 아이라(Ayila, 5610m)고개. 티베트의 수많은 고개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하다는 고개다. 그야말로 구절양장인데 차가 마주 오면 비켜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길을 밤새 어둠을 헤치고 왔다. 샹그릴라와 같다는 구게왕국이 아니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여정이다.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 한다. 새벽어둠을 뚫고 구게왕국의 입구 짜부랑(札布讓)마을로 향한다. 짜다현에서 수트레지강을 따라 서쪽으로 약 20여 킬로미터 떨어곳에 있다.

마을을 벗어나기 무섭게 황토의 바다로 빠져든다. 벌거숭이 민둥산을 몇 개 넘어서 황무지 초원을 지나자 좁고 험한 계곡으로 들어선다.

G-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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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티베트의 오지에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불교도의 유토피아를 샴발라(Shambhala)라 했는데 그곳이 히말라야 산맥 북쪽 어딘가에 있다고 알려졌다.

현자(賢者)들이 살았다는 전설의 이상향 샴발라(Shambhala)!

그 샴발라를 구게왕국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과연 샴발라인 구게왕국은 있는 것일까? 우리도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자못 흥분이 되기 시작한다.

황막한 산길을 돌아 협곡 밑으로 내려가니 먼동이 트는 가운데 강줄기가 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카일라스에서 발원하여 인더스 강으로 흘러드는 수트레지강(象泉河)이다. 강폭은 어림잡아 5,6백 미터는 족히 되지만, 갈수기 때문인지 실뱀 같이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전부다. 마른 강 옆으로는 거대한 토림(土林)이 서있는데 수천 수 만년의 침식작용이 빚어낸 장관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근처 어딘가에 유토피아인 샹그릴라, 즉 샴발라가 있다고 전한다. 그곳에서 들어가는 길은 달이 뜨면 나타난다고 했다... 이곳 ’달의 성(月城)‘ 계곡은 히말라야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 속의 이상향(理想鄕)이 신비롭게 채색되어 있었다’ -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 김규현 著, 351쪽

라고 묘사한 다정 김규현선생(티베트 전문연구가)이 생생이 묘사한 그대로다.

계곡을 따라 깊이 들어 갈수록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귀부신공(鬼斧神工),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이상향이라는 샴발라를 찾아 가는 길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게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지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마른 강이라고는 하지만 곳곳의 개천을 가로지르고 돌밭을 지나야 한다. 이렇게 갈수기 때만이라도 구게왕국을 볼 수 있는 것은 수트레지강의 특별한 배려인 셈이다.

강기슭 오아시스 같은 마을 짜부랑(札布讓)을 지난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없고 굴뚝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연기 몇 개가 하늘에 뻗치고 있다. 샴발라로 이야기되던 구게왕국은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킬로미터 남짓 어느 산꼭대기에 있을 것이다.

수트레지강 협곡이 하도 넓고 깊어 지나쳐 버리기가 십상이라는 가이드 말에 눈에 힘을 주어 살펴 나간다.

마른 개천을 따라 한참을 가자 멀리 계곡사이로 설핏 유적지가 스친다.

협곡과 험한 산길, 그리고 하천으로 바리케이트를 친 요새 같은 성벽 흔적이 눈에 든다.

구게왕국이다.

무너진 성벽 같은 계곡을 지나 구게왕국으로 다가서자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올린 히말라야산맥을 배경으로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토림이 시선을 빼앗는다.

가까이 갈수록 하얀 설산과 황토빛 토림은 하나 둘씩 겹쳐지면서 마치 마스게임처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보여 준다.

아, 그 천변만화를 형언하기란 쉽지 않다. 수트레지강 계곡에 펼쳐진 황토절벽은 규모자체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구게왕국에서 본 짜다토림
구게왕국에서 본 짜다토림
구게왕국에서 본 짜다토림 협곡
구게왕국에서 본 짜다토림 협곡

거대한 숲 같기도 하고 또 혹은 거대한 성벽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자기가 상상하는 어떤 형상으로 변하는 재주도 부린다. 일순 토림은 캔버스가 되어 사자도 그려지고 코끼리도 그려지고 수만 병마용(兵馬俑)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나무 한그루 없는 흙벽이 수천 수 만년 동안 자연의 풍상을 겪으며 만든 기기묘묘한 자태는 그야말로 신비다.

빼놓을 수 없는 경이로운 경관은 아침노을이다. 새벽같이 길을 나선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높은 산을 넘은 해가 뒤늦게 빠끔히 얼굴을 내밀자 토림은 또 다시 춤을 추며 변신하기 시작한다.

따가운 햇살과 어우러져 시시각각 요염한 스펙트럼으로 물결치는 황토의 숲은 비현실적이다. 수천만 년 동안 바람과 비가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황토의 벌판이 향연을 펼친다.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햇빛을 받아 노랗게 물든 토림의 조화는 극치를 이룬다.

바로 이곳이 샴발라(Shambhala)라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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