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4편] 영원히 패하지 않는 聖湖, 마나사로바

백민섭 승인 2021.08.10 14:07 | 최종 수정 2021.08.10 14:15 의견 0
마쟈장뿌(马甲藏布)강과 어우러진 푸란현 전경
마쟈장뿌(马甲藏布)강과 어우러진 푸란현 전경

다음 날 새벽. 문도 안 연 식당 문을 두드려 멀건 따미조우(大米粥-흰 쌀죽) 한 그릇을 들이키고 길을 나선다. 오늘 가야 할 길도 만만치가 않다. 구게왕국이 있는 짜다(札達)까지 하루 종일 해발 4600~5200미터 사이를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급했으나 밤새 악전고투하며 지나갔던 돌밭 길을 악몽처럼 되짚어 나오자, 지난밤 살짝 얼굴만 비추었던 히말라야가 하얗게 웃고 있다. 어쩜 신은 그토록 아름다운 대지를 만들어 놓았는지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성함에 모두 압도된다.

밤새 투덜댔던 불평불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푸란현과 히말라야산맥
푸란현과 히말라야산맥

푸란을 빠져나오자 카일라스산(Mt. Kailash)의 신성한 웅자가 첫 눈에 든다. 힌두교와 불교, 인도의 자이나교,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뵌교가 모두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산이다.

우리에게는 수미산(須彌山)으로 알려져 있으며 티베트 사람들은 강린포체(GangRinpoche-‘소중한 눈의 보석’이라는 뜻) 라고 부른다. 티베트 고원 서남부에 있는 강디쓰산맥(冈底斯山脉-티베트어로 "많은 산 중의 주인공"이란 뜻)을 구성하는 수많은 봉우리들 중 하나, 6714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카일라스가 유독 주목받고 숭배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티베트어로 '눈의 보배'라는 뜻을 지닌 카일라스. 불교 신자들이 수미산으로 여기는 산이다
티베트어로 '눈의 보배'라는 뜻을 지닌 카일라스. 불교 신자들이 수미산으로 여기는 산이다

카일라스산은 앞으로는 히말라야, 뒤로는 쿤룬산맥으로 둘러 싸여 있고, 서쪽으로는 카라코람 힌두쿠시, 동쪽으로는 쓰촨성과 윈난의 험준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 안에 호수의 연꽃처럼 검은 카일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카일라스는 피라미드처럼 네 면이 있는데 각 면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 네 개의 강들이 시작된다. 북쪽으로는 인더스강이 시작되고 서쪽으로는 수트레지강(象泉河)이, 동쪽으로는 얄룽장뿌강이 뱅골만으로 흘러서 티베트와 인도의 젖줄이 된다. 남쪽으로는 카르날리강(Karnali)이 인도로 가서 갠지스강이 된다.

척박한 티베트고원과 인도를 적셔주는 네 개의 강이 카일라스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유달리 숭배 받는지도 모른다.

카일라스는 산의 생김새와 신화만으로 신성함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카일라스의 순례자들은 산의 중심부로 다가가면 강한 충동을 받는데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있을 것도 같았다.

우리 일행은 그 신비한 무엇을 느껴보기 위해 카일라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다르첸(塔钦, Darchen, 4560m)으로 간다.

다르첸은 카일라스(수미산)로 순례 온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마을이다. 언제부터인가 중국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길이 생기고,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티베트인들의 삶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야크 배설물과 흙을 섞어 만든 티베트인들의 전통 집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다. 태양전지로 켜지는 가로등이 늘어선 아스팔트 도로변에 지어진 벽돌집은 티베트인들에게 새로운 터전이 되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다르첸 입구
다르첸 입구

오랫동안 살았던 삶의 터전을 조금씩 뺏기고 있는 다르첸 사람들은 공안국의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중국 군대의 차량을 타고 도로공사현장으로 가야 하는 티베트 사람들.

식당과 호텔을 차린 중국인들은 여행자와 순례자를 상대로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며 경쟁자 없이 돈을 벌고 있다. 매춘이 가능한 마사지업소도 영업 중이다.

이런 환경에 처해있는 티베트 원주민들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한숨이 나온다.

개발로 인해 혜택을 기대했지만 다르첸의 터줏대감들에게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굴러 온 외지인들에게 밀려나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하늘 아래 첫 번째 마을 다르첸(塔钦, Darchen). 수많은 순례자들이 카일라스를 순례하면서 환생을 꿈꾸고 행복한 내세를 기원하는 천국으로 가는 문이다. 이곳에 사는 티베트인에게도 축복이 가득한 그들만의 터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카일라스 코라는 애초에 중국정부에 제출한 허가사항에 없었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바가초원에서 본 카일라스
바가초원에서 본 카일라스

카일라스 앞 동남쪽으로 커다란 호수가 두 개 있다. 두 개의 호수는 달과 해를 상징하는데 이 두 호수의 물은 모두 카일라스에서 시작된다. 아름다운 하늘의 푸른빛과 히말라야 설산의 하얀빛을 고스란히 담은 호수는 티베트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 유산이다. 수억 년 전 히말라야가 융기되면서 생긴 티베트의 호수들은 영혼의 안식처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젖처럼 티베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생명수이기도 한 것.

마나사로바와 락샤스 탈도 예외가 아니다.

천상에서 내려온 다섯 명의 선녀가 변하여 히말라야의 봉우리가 되었는데, 그 중 재물을 관장하는 관영선녀(冠靈仙女)가 변한 나무나니봉(納木那尼峰, 7728m-힌두교도들은 굴라만다타봉이라 한다) 을 배경으로 언덕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 ‘달의 호수’라는 귀호(鬼湖) 락사스 탈이 펼쳐져 있다. 낮고 넓게 떠있는 구름이 그대로 호수에 내려 앉아 있어, 어둠의 호수요 선에 대항하는 악마의 호수라는 명성에 걸맞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정지된 화면 같은 차가운 아름다움이 슬픔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왜 이 아름다운 호수가 어둠을 대변하는 호수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호수가 잘 보이는 언덕에는 수많은 돌무덤과 카타들이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호수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귀호(鬼湖) 락사스 탈 호수(Rakshas Tal). 어둠의 호수요 선에 대항하는 악마의 호수
귀호(鬼湖) 락사스 탈 호수(Rakshas Tal). 어둠의 호수요 선에 대항하는 악마의 호수

락사스 탈 호수 북쪽 끝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서니 이번에는 ‘해의 호수’라는 성호(聖湖) 마나사로바가 보인다. 해발 4560미터, 둘레가 110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호수라 부르기에는 왠지 겸연쩍다. 락사스 탈과는 불과 2~3킬로미터의 지근거리에 있는 마나사로바는 티베트의 수많은 호수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되는 성호 중의 성호(聖湖)다. 성산 카일라스가 하늘을 의미한다면 마나사로바는 땅을 의미한다.

카일라스가 우주의 아버지라면 마나사로바는 우주의 어머니인 셈이다.

그래서 호수는 낭만적인 신화와 아름다운 전설이 무수하다.

그 중 하나가 11세기쯤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수행자였던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년)와 토착종교인 뵌교(芬敎, BOn)의 실력자 나로뵌충의 치열한 교리논쟁이다.

그 전설적인 싸움을 가장 자세히 묘사한 것은 티베트연구의 선각자인 茶汀 김규현 선생이다. 그의 저서<티베트의 신비와 명상>(2000년, 도서출판 도피안사刊) 에서 인용해 본다.

... 불교가 들어오기 전 이 산은 샤마니즘적 전통 종교인 뵌포교의 성지였다. 이름 또한 ‘강 린포체’가 아닌 ‘강 디세’였다. 어느 날 유명한 밀교 행자 미라래빠가 찾아와 토굴 터를 찾음으로써 뵌포교와의 한판승부는 필연적이었다. 표면상으로는 강 디세의 헤게모니 쟁탈전이었지만, 실제로는 전 티베트 고원을 걸고 싸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쪽에서도 결코 물러날 수 없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이었다.

이 역사적인 싸움은 3막으로 구성되었다. 서막은 설전으로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미라래빠가 참으로 위대한 자라고 알려져 있건만

알고 보니 벌거벗고 잠자는 늙은 망나니에 지나지 않네.

아름다운 노래 입으로 읊고 다니지만 손에 든 것은 등지팡이 하나뿐

찾아보아도 위대한 것은 하나도 없네...하략"

뵌교의 대표선수 ‘나로뵌충’은 빈정거리며 시비를 걸었고 미라래빠는 받아쳤다.

"...이 늙은 미라는 벌거벗고 잠자니 이원(二元)의 상대 세계의 초월을 상징하네.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내 가슴 속에서 넘쳐흐르는 샘물

붓다의 경전들을 말하는 노래들이라네.

손에 쥔 지팡이는 윤회의 바다 건너는 도구

마음과 물질 통달한 머리는 신들의 도움 없이도 모든 기적 행하네."

나로뵌충의 저주와 멸시의 말은 밀라래빠의 노래에 의하여 연꽃송이들로 변하여 버렸다.

이어서 힘을 쓰는 실력대결과 산꼭대기 오르기 내기가 펼쳐졌다. 싸움은 점입가경이었지만 세판 모두 미라래빠의 승리였다. 불교의 승리였다.

이에 나로뵌충은 패배를 인정하고 산의 소유권을 밀라래빠에게 내주었다. 이에 밀라래빠도 너그러이

수미산과 마팜호수의 참배권만은 인정해주는 협정을 체결하여 지금도 뵌포교는 그 옛날 방식대로

오른쪽으로 코라(순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그렇게 하여 강 디세산은 ‘수미산’이 되었고 마팜 호수는 '마팡융초(玛旁雍错) - 영원히 패하지 않는 진리의 호수'가 되었다. 오색의 무당(巫堂) 깃발 날리던 티베트 고원은 '옴 마니 파드메 훔', 육자명왕진언이 울리는 불국토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카일라스(수미산)의 주도권을 놓고 세 번에 걸쳐 이곳에서 대결을 펼친 결과 불교의 밀라레빠가 승리하여 세력을 장악하고 티베트 고원을 불교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마나사로바는 ‘영원히 패하지 않는 진리의 호수(玛旁雍错)’라는 뜻을 지닌 호수로 신격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마나사로바호수(玛旁雍错)
마나사로바호수(玛旁雍错)

불교 신도들은 호수를 돌거나 목욕을 하면 각종 망상과 번뇌, 죄업을 씻어 낼 수 있고 그 물을 마시면 만병을 물리쳐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힌두교도들은 메루산(카일라스)의 주신인 시바신의 부인이 이 호수에서 몸을 씻으며 신성을 유지했다는 전설 때문에 호수에서 몸을 씻어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평생의 염원을 이루는 성지로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마나사로바호수는 일 년 내내 무수한 순례자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마나사로바와 카일라스의 신성함이 합쳐져 아리 지역에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중의 유혹을 하고 있다.

세상 어디를 가든 무수한 신화와 만나게 된다. 이 아리(阿里)고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왜 신화를 좋아하는가?

수천 수만년 전에 생성된 이야기가 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귀를 쫑긋하게 하는 것인가?

신화는 재미도 있거니와 그 속에 우리네 삶이 투영되었다고 믿는 때문은 아닐런지. 우리는 언제나 신선이 되고 싶어 하질 않았던가.

성산과 성호의 아름다운 신비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우리는 또 다른 신화인 구게왕국을 만나러 바람처럼 바가초원을 달리기 시작한다.

바가(巴嘎)초원
바가(巴嘎)초원

아리 방향은 평탄한 초원을 달리는 길인데 반해 짜다 방향은 첩첩이 겹친 산들이 바리케이트 같다.

5천미터급 산을 도대체 몇 개나 오르고 내렸는지 셀 수도 없다. 하늘 끝까지 왔다 싶다가도 다시 초원을 지나고 산굽이를 돌고 돌아 고개를 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짜다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위험도 훨씬 높아졌다. 천애낭떠러지를 끼고 만든 고개 길이 왜 그리도 끝이 없던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선택한 지름길은, 주먹만한 돌들이 널린 비포장 길로 추락위험과 차량파손의 이중고를 감내해야하는 코스.

몇 차례의 타이어 펑크와 자잘한 사고를 이겨내며 짜다로 향한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비포장 산길을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씩 달리는 우리들도 어느덧 지쳐간다.

앞차가 뿜어내는 먼지 사이로 멀리 몇 개의 불빛이 별처럼 보일 때 어둠과 함께 짜다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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