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촉수를 타고

이현수 승인 2021.07.02 14:38 | 최종 수정 2021.07.02 14:46 의견 0

촉수 좋아하세요? 8~90년대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면 다음을 기억하시겠죠.

‘초신전설 우르츠키 동자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1987 ~ 1996, 타카야마 히데키高山秀樹 외)
‘초신전설 우르츠키 동자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1987 ~ 1996, 타카야마 히데키高山秀樹 외)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RALL くりいむレモン : SF超次元傳說ラル’ (1984, 후지모토 타츠야富本起矢, 25분)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RALL くりいむレモン : SF超次元傳說ラル’ (1984, 후지모토 타츠야富本起矢, 25분)

겜덕이라면 아마 다음을 기억하시겠죠.

‘매니악 맨션Maniac Mansion’ (1987, 루카스 필름 게임즈Lucas Film Games, 론 길버트Ron Gilbert)
‘매니악 맨션Maniac Mansion’ (1987, 루카스 필름 게임즈Lucas Film Games, 론 길버트Ron Gilbert)
‘텐타클 최후의 날Day of the Tentacle’ (1993, 루카스 아츠Lucas Arts, 팀 샤퍼Tim Schafer,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
‘텐타클 최후의 날Day of the Tentacle’ (1993, 루카스 아츠Lucas Arts, 팀 샤퍼Tim Schafer,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

오늘 이야기할 분은 촉수를 사방에 휘날리며 전 세계에 사랑과 파멸, 악몽과 정신 파괴를 전파하시는 바로 그 분 크툴루Cthulhu님과 인간의 정신세계를 아득하게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올드 원Old One님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한 H.P.러브크래프트H.P.Lovecraft의 코스믹 호러 세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이 분이 올드 원의 사자 크툴루님이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지만, 내가 그의 팬이 되었던 30년 전만해도 러브크래프트는 한국에서 그리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다. 물론 이제는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번역 발간되고 그의 이름과 코스믹 호러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등 많은 그의 작품 세계가 대중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다.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총 7권으로 출간되었다.

H.P.러브크래프트. 1890년 8월 20일 미국 프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 출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했으며 극도로 예민했다고 함. 그전까진 볼 수 없었던 기괴한 단편 소설들을 씀.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 (1928), 인스머스의 그림자Shadow Over Innsmouth’ (1936),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The Whisperer in Darkness’ (1931), ‘던위치의 공포The Dunwich Horror’ (1929), ‘광기의 산맥At the Mountains of Madness’ (1936),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The Dream-Quest of Unknown Kadath’ (1943) ‘에리히 잔의 선율The Music of Erich Zann’ (1922), ‘우주에서 온 색체The Colour Out of Space’ (1927) 등등.

사후 동료 작가인 어거스트 델레스August Derleth가 그의 작품들을 모아 정리하고 그 속에 드러난 하나의 세계관을 정립한 것이 후세에 ‘크툴루 신화’라고 불리는 것이 된다. 살아생전에는 큰 조망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 모든 기괴하고 비뚤어지고 비틀어지고 공포스럽고 으스스하고 소름끼치고 악몽과도 같은 매혹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아버지요, 인도자요, 단 하나의 올드 원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크툴루가 뭐고 러브크래프트가 뭐고 그게 뭐가 무서운 건데, 이 씹덕아?’라고 한다면 ..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는 보통 다음과 같다.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들 그리고 크툴루 신화에는 인간의 인지력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너무나도 고차원적 존재이기에 인간이 그들을 마주하게 되면 미쳐버리게 된다. 아니, 마주하기도 전에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은 붕괴되고 미쳐버리게 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길을 가다가 개미를 밟았다고 해보자. 개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까? 물론 그 날 기분에 따라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겠지만, 보통은 개미를 밟은 줄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밟힌 개미와 그 옆에 있던 그 개미의 여자 친구는 무슨 기분이 들까? 저 거대한 존재는 왜 내 남자 친구를 밟고 지나간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우리 종족의 죄에 대해 내리는 심판인가? 말도 통하지 않고 뭘 생각하는지도 모를 저 존재는 왜 우리에게 저렇게 구는 것인가. 하지만, 저 거대한 존재인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다. 무슨 생각과 목적이 있어서 개미를 밟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개미를 밟았는지 인식도 하지 못한다. 올드 원이 보기에 인간은 그런 존재일 뿐이다. 별로 와 닿지 않는다고?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 그 종교가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에 대한 신앙을 추구하는가? 당신들은 어느 날 그 전능한 신의 발톱을 흘긋 보고 그 신을 전능한 존재로, 당신들의 창조자로, 당신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자로 숭배하나, 그 신은 아무 생각이 없고 당신들이 자신을 경배하는 것도, 아니 당신들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신이 발톱을 깎다가 옆으로 튄 거대한 발톱이 당신들을 깔아뭉개 신도들 거의 대부분이 죽게 된다. 죽어가면서 신이시여,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죄를 뉘우칠 테니 우리를 구원하소서! 외치지만 신은 무덤덤하게 발톱과 거기 깔린 수백만 명의 인간의 시신을 들어 올리고는 후 불어 마당으로 던져버리더니, 냉장고에 뭐 먹을 거 없나 뒤지러 간다. 어때 이제 좀 무섭지 않은가?

아, 코스믹 호러는 뭐냐고? 이 광활한 우주,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 사이에 던져졌을 때 캐찐따 인간이 느낄 어마어마한 존재론적 공포를 의미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혼돈의 시기를 살았다. 1차 세계 대전이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인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밀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미지의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 혼돈의 시기를 살았단 말이다. 혼돈의 시기에 작가들이 늘 그랬듯, 러브크래프트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함, 가벼움, 세상의 지배자라고 잘난척하더니 결국 지들끼리 죽이면서 자멸하는 캐병신들에 불과하다는 그 허망함을 그렸고, 무너져가는 위태로운 세계를 붙잡기 위한 충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자, 그럼 러브크래프트의 후계자들과 크툴루의 신봉자들을 나열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자. 혹시 당신도 크툴루를 신봉한다면 다음번 비밀 집회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1. 스티븐 킹Stephen King

최근 스티븐 킹이 자택에서 찍은 사진. 음 ...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인데. 언제 이민 오셨지?

2. 기에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광기의 산맥’을 영화화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2012,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2시간 4분)를 보고 포기했다가 ... 요즘 다시 추진 중이라고 한다.

3. 존 카펜터John Carpenter

촉수는 안 나오지만 ‘매드니스In the Mouth of Madness’ (1994, 존 카펜터, 1시간 35분)는 가장 훌륭한 코스믹 호러 영화 중 하나이다.

4. 스튜어트 고든Stuart Gordon의 ‘좀비오Re-Animator’ (1985, 1시간 44분). 동명의 러브크래프트 소설을 원작으로 배경을 현대로 옮긴 작품. 속편 ‘좀비오2Bride of Re-Animator’ (1990, 브라이언 유즈나Brian Yuzna, 1시간 36분)의 감독 브라이언 유즈나는 ‘좀비가 좀비좀비’ 편을 참조하시길. 스튜어트 고든은 또 다른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 ‘지옥 인간From Beyond’ (1986, 스튜어트 고든, 1시간 26분)을 만들기도 했다.

5.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미국 소설 덕후답게 그 역시 작품 속에 러브크래프트의 인장을 남겨놓는다.

6. 딘 쿤츠Dean Koontz

스티븐 킹 뺨을 때릴 수 있는 작가이다. 꼭 읽어보시길.

7.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무서운 일이다.Two possibilities exist: Either we are alone in the Universe or we are not. Both are equally terrifying.’ 아서 C.클라크Arthur C.Clarke의 명언. 러브크래프트를 의식하고 한 말은 아니지만 코스믹 호러스럽다.

8. 조지 R.R.마틴George R. R. Martin

그가 젊은 시절 새로 이사 간 마을의 작가 이웃들과 즐겼던 가장 큰 취미는 TRPG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심취했던 게임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다룬 게임이었으며 조지 R.R.마틴은 아예 게임 마스터를 맡아 게임을 진행했다고 한다.

9. 미야자키 히데타카Myazaki Hidetaka와 ‘블러드본Bloodborne’ (2015, 프롬 소프트웨어From Software, 미야자키 히데타카)

‘블러드본’은 빅토리아 풍 고딕 호러로 시작해서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로 끝난다.

작중 등장하는 우주 최고의 미녀 ‘우주의 딸 이브리에타스’ 당신이 본 최고의 미녀 아닌가? 아니라고? 당신 계몽 수치가 모자라구만.

그리고 조지 R.R.마틴과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2022년 발매를 목표로 ‘엘든 링Elden Ring’ (2022 예정, 프롬 소프트웨어, 미야자키 히데타카)을 만들고 있다. 이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색채가 묻어나올 것으로 보인다.

10. 끝도 없으니 이만 합시다.

11. ‘싱킹시티The Sinking City’ (2019, 프로그웨어Frogwares, 오렐리 루도트Aurélie Ludot)

사운드와 분위기. 두 가지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잘 표현해냈다. 누군가는 똥겜이라 욕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붙으면 플레이할 수 밖에 없는 저주를 받은 본인은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괴상한 소리들, 그 소리들 ... 아아 그 소리들.

p.s. 이 글은 메탈리카Metallica의 1984년 앨범 ‘Ride the Lightning’의 8번 트랙 ‘The Call of Ktulu’를 들으면서 썼습니다.

(이미지 출처=‘超神伝説うろつき童子’ (Phoenix Entertainment), ‘くりいむレモン : SF超次元傳說ラル’ (A.P.P.P.), ‘Maniac Mansion’ (Lucas Film Games), ‘Day of the Tentacle’ (Lucas Arts), ‘CTHULHU’ (Andrée Wallin), ‘발렌타인데이 러브크래프트 이벤트’, (https://twitter.com/goldenbough_BRC/status/565329194935386114/photo/2), ‘Stephen King’ (https://twitter.com/StephenKing/status/1389751249709457409?s=20), ‘Bloodborne’ (From Software), ‘The Sinking City’ (Frogw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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