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계곡'에서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방법

장서희 승인 2021.02.18 17:12 | 최종 수정 2021.02.19 09:10 의견 0

<엘라의 계곡>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라크 파병 후 미국에 돌아와 끔찍하게 살해당한 아들 마이크의 사건을 쫓는 퇴역 군인 행크(토미 리 존스), 백인 남성 보수주의자를 대표하는 그는 마이크의 사건을 통해 점점 변화하게 된다. 마이크 사건을 맡은 싱글맘 형사 에밀리(샤를리즈 테론), 여성 진보주의자를 대표하는 그녀 역시 사건을 따라가며 행크의 마음을 이해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는 관객들이 눈을 돌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을 보게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어쩌면 교조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세상의 어두운 면이 너무도 끔찍하고 그로 인한 슬픔 또한 크기에 영화의 태도가 단점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핸드폰의 비디오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라크 전장을 담은 듯하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화면, 이라크전 당시 마이크가 찍힌 이 비디오는 모든 미스터리의 해답을 가진 화면이지만, 그 의미는 영화 마지막에서야 드러난다. 

토막 나서 불에 탄 채 발견된 마이크의 시신을 부검하는 현장에서도 행크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군 수사관으로 평생 살아온 냉정한 행크도 아들이 몇 번 찔렸냐고 반복해서 물으며 분노와 슬픔을 드러낸다. 수사권이 없는 행크는 에밀리의 수사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남성 보수주의자, 기독교인, 유능한 전직 군인인 행크는 여성 진보주의자, 무신론자에다 시시한 사건만 맡는 에밀리의 영역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려 한다. 둘이 마주 보고 위치한 경찰서 복도 장면은 이 둘의 관계를 명확히 시각화해준다. 

행크와 에밀리는 같이 다니면서 투닥거리지만 서로 이해하게 되고, 행크는 에밀리의 집에서 같이 식사한 뒤 그녀의 어린 아들에게 다윗이 엘라의 계곡에서 골리앗과 맞서 싸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행크와 에밀리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둘은 여전히 다른 위치에 서있다.

결국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마이크는 이라크에 같이 파병되었다 돌아온 동료 군인들에게 살해 당했던 것이다. 핸드폰 비디오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전쟁의 참화가 담겨 있었다. 그 진실의 순간 행크와 에밀리는 함께 앉아있다. 행크는 초반의 꼬장꼬장함을 잃은 늙은 남자의 모습으로, 에밀리는 이제 악만 남은 형사의 모습으로 변해 보인다. 마이크나 그의 동료들 역시 보통의 청년들이었으나 이라크에서의 끔찍한 경험들로 괴물처럼 변화해왔듯이 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변해왔으며 이제는 나란히 앉아있다. 

이제 행크는 변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그토록 사랑했던 국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는 이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을 한 멕시코 이민자 병사에게 사과를 건네며 군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에밀리도 변했다. 미국의 보수주의를 믿지 않던 그녀도 아들과 가족과 국가를 사랑하며 평생을 보낸 행크에 대해 신뢰와 존경을 보내게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엘라의 계곡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교육상 좋지 않다고 주장하던 그녀지만 이제는 아들이 좋아하는 그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 아들에게 엘라의 계곡 이야기를 들려주는 에밀리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는 문틈으로 사이로 다가가며 아직도 우리의 시야가 완전히 열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넓은 공간을 잡아주자 아이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한다. ‘엘라의 계곡으로 내려갈 때 다윗은 많이 무서웠겠지?’ 컷은 바로 마이크의 사진으로 전환되고 이를 내려보는 행크의 클로즈업이 나타난다. 그 위로 들리는 에밀리의 목소리, '그럼. 아주 무서웠을 거야.'

다음날 아침, 행크는 성조기를 거꾸로 게양한 뒤 테이프로 고정한다. 국기를 거꾸로 게양하는 것은 국제 구조 신호이다. 거꾸로 날리는 성조기는 온 힘을 다해 외친다.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제발 누구라도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영화는 이라크전 참전 용사들의 끔찍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목격했거나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심리적인 불안장애로 발병하더라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의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상이(공무상의 질병 포함)’란 군인 등이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뜻하는데 상이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그 부상·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그 인과관계는 신청인측에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암함 피격사건이나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 등에서 피해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으나, 대개 그 인정은 흔치 않다. 군 내부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어 피해자가 병원 진료를 꺼리고 고통을 참는 등으로 인해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탓이다. 국가가 신체적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질환에 대해서도 상이의 인정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군인, 경찰, 소방인력 등 외상에 노출되는 공무 인력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본격적인 지원과 배려에 힘써야 할 때이다. 

사진 출처=<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감독 Paul Haggis 제작 Waner Independe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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