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을 바꿔 놓은 '머니볼 Moneyball'

장서희 승인 2021.02.05 09:34 | 최종 수정 2021.02.05 09:39 의견 0

영화 머니볼은 현대 야구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을 있게 한 한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영화가 시작되면 텅 빈 애슬레틱스 홈구장을 한 구석에 앉은 주인공 빌리 빈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굵은 기둥을 기준으로 구장의 실내와 실외가 동시에 보이는, 얕은 심도와 깊은 심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미쟝센은 이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인 빌리는 구장에 앉아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듣고 있다. 어둠 속 한줄기 빛으로 눈만 드러나 있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은 말 한 마디 없이 빌리의 내면을 표현해낸다. 이 영화는 속을 알 수 없는 이 눈빛 클로즈업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야구와 삶에 관한 주인공의 고뇌를 시각화한다. 

애슬레틱스는 패배하고, 팀은 간판 선수마저 양키스에게 빼앗긴다. 다음 시즌을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다는 빌리와 더 돈을 쓸 수 없다는 구단주가 대립한다. 이제 빌리는 새로운 기준으로 선수들을 영입해 팀을 재건해내기 위해 경제학과 출신의 피터와 의기투합하여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들어간다. 선수의 스타성, 외형, 눈에 잘 띄는 성적 등이 아니라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선수들을 낮은 가격에 영입하는 것이다. 빌리가 피터를 데리고 참가한 회의에서 늙은 스카우터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웅성거리는 것과 달리 빌리와 피터의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빌리의 주장이 더 확고해질수록 스카우터들의 반응 샷은 점점 더 산만하게 편집된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빌리의 클로즈업과 그것을 지켜보는 피터의 클로즈업이 이 장면을 지배한다. 이윽고 빌리와 피터의 이론을 가장 확실하게 입증할 상징적 인물인 스캇 해티버그가 1루수로 영입된다. 

그러나 아트 감독은 해티버그를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팀이 빌리의 뜻과 다르게 운영되면서 애슬레틱스는 위기에 빠진다. 언론은 야구를 숫자로 파악하려는 세이버매트릭스와 머니볼 이론을 비웃는다. 바닥을 친 빌리는 아트 감독에게 선수단 정리를 통보한다. 이후 애슬레틱스는 야금야금 승리를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적의 연승 행진. 이제 20연승이라는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다. 

운전하는 빌리의 옆 얼굴 클로즈업이 롱테이크로 등장하고, 그가 경기 중계를 듣고서 차를 돌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40분이 지난 뒤에 드디어 현장 경기 장면이 등장한다. 빌리가 경기장에 온 뒤로 승승장구하던 팀이 실점을 하기 시작한다. 화창한 날씨 아래 펼쳐지던 야구 시합은 갑자기 콘트라스트가 큰 기괴한 조명 아래에 그려지게 된다. 두 화면 사이에 날씨가 흐려지는 하늘 샷을 넣어 동기화를 하고 있지만, 양쪽의 조명 차이는 너무나 극단적이다. 어느새 현장 사운드도 사라지고 불안한 음악과 상대 팀의 타격 소리만 들려온다. 화면은 점점 기괴하게 보이고 조명 콘트라스트는 더욱 극단적으로 강해진다. 11점이나 됐던 리드를 결국 지키지 못하는 에슬레틱. 이질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트 감독이 대담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사운드가 회복된다. 감독은 해티버그를 대타로 세운다. 야구장 내 라이트가 켜졌음에도 여전히 콘트라스트가 지나치게 강한(실제 야구장 라이트는 그림자가 없이 모든 공간을 밝힌다) 화면 속에서 극적으로 해티버그의 홈런이 터진다. 전설의 20연승이 완성된 것이다. 체력단련실에서 소리 없는 TV 화면으로 이를 지켜보던 빌리는 마치 구원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영화는 영광의 순간, 카메라를 현장에서 철수시킨 뒤 TV로 이를 지켜보는 빌리의 모습을 기록한다.

엔딩씬에서 다시 영화 내내 반복됐던 운전하는 빌리의 옆모습이 나타난다. 카메라가 점점 인물에게 들어가면서, 어딘가를 바라보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빌리의 눈을 담은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런 깊은 눈을 가진 빌리는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실천해나감으로써 끝내 팀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러한 빌리의 팀 운영 철학을 받아들인 보스턴은 결국 밤비노의 저주를 깼으며, 이제 머니볼은 모든 구단 운영의 기본이 되었다. 

영화 속 빌리는 특별히 야구와 선수시장에 대해 많은 정보와 식견을 갖고 있는 구단주였다. 반면 그와 계약을 해야 하는 선수들은 그만큼의 정보와 협상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이러한 선수들의 불리한 입지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선수계약에 있어서 본인 대면 계약만을 허용해왔었다. 이로 인해 정보도 부족하고 계약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이 구단과의 계약에서 불리한 지위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끈질긴 요청 끝에 KBO는 2018년 2월 1일 공인 선수 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1년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야구 규약을 불공정행위로 보아 시정명령을 내린 이후 십수 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인 선수 대리인 제도가 공정성을 담보로 앞으로 우리 프로야구의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마치 야구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함께 지켜봐야할 때이다.  

(사진 출처=영화 <머니볼>, 감독 Bennett Miller, 제공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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