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와 우리는 다르지 않다

장서희 승인 2021.01.15 10:18 | 최종 수정 2021.01.16 08:13 의견 0

1981년 미국의 어느 버스 정류장, 백인 청년이 홀로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허공을 부유하는 깃털을 좇는 롱테이크로 시작하는 영화 <포레스트 컴프>의 주인공, 포레스트이다. 우여곡절이 있는 그의 인생을 상징하듯 부유하던 깃털은 결국 포레스트의 발 밑에 내려앉는다. 벤치에 흑인 여성이 앉자 포레스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격변의 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 사회를 그의 범상치 않은 삶 속에 절묘하게 녹여낸다. 

보행 보조장치를 달고 처음 학교에 가는 날, 스쿨버스라는 낯선 공간으로 들어가는 포레스트의 불안감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촬영된 시점샷으로 표현된다. 포레스트는 모두가 자신을 거부할 때 기꺼이 옆자리를 내어준 제니와 평생 친구가 된다.

이후 포레스트의 보조장치가 부서지는 그 유명한 '달려, 포레스트, 달려(Run, Forest, Run)' 장면에서 포레스트가 악동들(사실은 학폭 가해자들)을 피해 달리기 시작하면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팬하며 포레스트를 화면 왼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으로 깊은 심도로 그가 나아가야할 공간이 또렷이 보인다. 이어지는 슬로우모션은 자전거를 타고 추격하는 악동들에게는 무력함을, 보조기구가 부서지면서 달리기 시작하는 포레스트의 다리에는 역동감을 부여한다. 

이후 여러 공간을 달리는 포레스트를 보여주는 몽타주 시퀀스에서는 어느 샷이든 포레스트를 위해 화면 한 구석은 열려 있고, 포레스트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화면 속 공간을 점령해 나간다. 지능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포레스트는 그렇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역동적으로 개척해나간다.

미식축구로 진학한 대학생활, 베트남전 참전, 탁구 실력으로 얻은 유명세, 그리고 허리케인 카르멘을 이겨내고 성공한 새우잡이사업 등 그야말로 격동의 시간을 거친 뒤 포레스트는 집으로 돌아온다. 잔디깎이 기계에 앉아있는 포레스트를 따라가는 트래킹은 이제 포레스트가 달리기를 멈추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갑자기 제니가 찾아온다.

얼마 후 포레스트와 밤을 보낸 제니가 끝내 떠나버리자 포레스트는 공허함 속에 남게 된다. 포레스트를 담아낸 공허한 샷들의 배경 사운드(엠비언스)로 조용한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 포레스트를 따라가는 짧은 트래킹 이후 포레스트는 샷 위쪽에 열린 공간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그리고 앞서 어디든 달려가던 어린 시절 포레스트와 유사한 몽타주가 시작된다. 포레스트가 미국 횡단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달린다는 포레스트에게 화면이 공간을 내어주며 달려야 할 이유를 제공해준 것이다.  

결국 포레스트와 제니는 재회하고, 아들 포레스트가 등장한다. 포레스트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시한부 환자인 제니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니는 숨을 거둔다. 이제 포레스트는 떠난 제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니의 무덤 앞에서 포레스트는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마음껏 슬퍼한다. 이 때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약간의 로앵글 미디엄샷으로 포레스트를 담아낸다. 

그리고 엔딩 씬에서 다시 깃털이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오프닝과 수미상관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포레스트는 인생이 깃털이 날리듯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뭐가 걸릴지 아무로 모른다는 엄마의 말이 정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포레스트가 운좋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이토록 현명한 엄마가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포레스트의 엄마는 아들이 지능만 조금 낮을 뿐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면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기 위해 애쓴다. 그 시절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소수의 중증 장애인을 제외한 대다수 장애학생들이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1975년 전(全)장애아동교육법(EHA)이 제정된 이래 2004년 현행 장애인교육향상법(IDEIA)으로 개정을 거듭하면서 장애인의 교육에 관한 권리가 계속 강화되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교육에 있어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작 법의 존재조차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의 70% 정도만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으로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학교에서는 특수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고 장애인 시설은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조차 지난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애인 교육의 문제는 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는 남들한테 떳떳하지 못해서라도 장애인 통합교육이나 장애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차별적 의견들이 더 이상 큰 소리를 내지 못하게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견고히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영화 <포레스트 검프>, 감독 Robert Zemeckis 제공 Paramount Pictures 제작 Steve Tisch/Wendy Finerman Production, Robert Zemeckis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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