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sy의 차이야기 일곱번 째] 붉은 고독 멜로디

김원경 승인 2021.01.06 10:17 | 최종 수정 2021.01.06 10:23 의견 0

눈이 30센티 넘게 오더니 이제 그쳤다. 
창가로 가보니 세상이 일순간에 흑백 사진이 되어버렸다. 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손에 들린 히비스커스 찻잔 만이 홀로 붉게 타오른다. 무채색의 텅 빈 공간을 가르며 떨어지는 붉은 꽃잎처럼.
달콤한 고독감이 밀려온다. 

딱 이 그림에 맞는 음악이 있었지.
카운터에 오디오로 향한다. 

나이 오십에 알게 된 세상살이의 비밀이 있는데 마음을 움직이려면 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가 날 때는 화를 풀려고 마음 쓰는 것보다 몸을 뜨거운 욕조에 담가두는 게 낫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게 좋다. 
버럭 남편을 캐나다로 옮겨 놓았더니 우거지상이 펴졌다.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달콤하게 고독한 여자가 되고 싶다면 고독한 음악과 한 잔의 차를 몸에 다운로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쳇 베이커와 빌 에번스가 따로 또 같이 연주한 Alone together와 뜨겁도록 붉은 히비스커스. 

먼 길을 걷다 지친 여행자의 회한 같은 쳇의 트럼펫에 에번스가 무심한 건반으로 글쎄 나도 그렇게 느껴. 너와 똑같다고 대꾸한다.
(Well, I feel that way too, Just the same as you) 

나는 음악이 색깔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칸딘스키가 컴포지션 연작을 통해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추상적 방식이 아니라 진짜로 빛과 소리의 자연과학적 깔맞춤으로 말이다.
소리와 빛은 둘 다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도미솔과 RGB의 파장 비율이 1:4/5:2/3로 똑같아서 소리와 빛의 관계가 일대일로 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추상화로 번역된다. 몬드리안의 색색의 네모들은 크기와 채도에 맞게 리드미컬한 소리가 된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그림으로 번역해서 음악 갤러리를 만들면 좋겠다. 액자에 '엘튼 존 컴포지션 <굿바이 엘로우 브릭 로드>', '바흐 구성 <골드베르크>" 라고 적어 놓으면 참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색감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실제로 2000년 일본의 한 넥타이 회사는 종달새 소리를 색깔로 바꿔 자연스럽고 세련된 넥타이 상품을 만들었다.) 

무채색의 배경에 채도가 낮은 빨간색의 면들이 몽글몽글 떨어지는 쳇 베이커를 들으며 고독하고 달콤하게 히비스커스를 홀짝인다. 꼭 색깔로만은 아니더라도 권할만한 좋은 차다. 오늘은 폭설의 풍경과 만나 쳇 베이커를 소환했지만 화사한 햇빛이나 산들바람에 매칭한다면 능히 댄스곡을 불러올 재간을 가졌다. 

클레오파트라가 마셨다는 꽃차.
카페인도 없고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서 요즘 같은 때 면역력 충만한 몸을 만들기에 좋다. 특유의 신맛으로 커피 대신 몽롱한 아침을 깨우는데도 특효고 살도 빠진다고 한다. 

문 열리는 소리. 나의 달콤한 고독이 끝나는 소리다.
옷을 겹겹이 껴입어서 눈사람처럼 동그란 손님이 언 손을 비비며 카운터로 온다. 

히비스커스를 권해볼 생각이다.
사실은 Alone together를 한 번 더 듣기 위하여.

저작권자 ⓒ OBSW,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