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차별에서 '겟 아웃'!

장서희 승인 2021.01.01 09:47 | 최종 수정 2021.01.01 09:54 의견 0

중산층으로 보이는 백인들이 한데 모여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액자 속 건장한 흑인 청년이그 대상이다. 놀랍게도 이는 노예제도 당시가 아닌 우리 동시대의 풍경이다. 백인들이 그에게 원한 것은 노동력이 아니라 젊고 건강한 육신 그 자체이다. 뇌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흑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 그 몸을 온전히 지배하려는 것이다.

영화 <겟 아웃>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크리스의 몸을 노리던 허드슨의 대사를 빌리자면, 백인에게 몸을 빼앗긴 흑인은 세상을 보고 듣기는 하지만 침잠의 공간(sunken place)에 갇힌 채로 그저 승객이나 관중처럼 아주 작게만 존재할 뿐 모든 통제는 백인이 한다는 것이다.

여자친구 로즈의 가족을 만나러 간 크리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범한 가족이나 이웃이 아니라 흑인의 몸을 빼앗는 데 혈안이 된 광기 어린 백인 공동체였다. 로즈의 엄마가 최면을 걸어 피해자를 결박하면 그녀의 아빠가 뇌 이식수술을 집도하는 것이다.

크리스 역시 최면에 무력하게 당하지만, 그는 묶여 있던 소파에서 뜯어져 나온 솜으로 귀를 막음으로써 가까스로 최면에서 벗어나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조상들로 하여금 피땀과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 목화솜이 백인들의 손아귀에서 그를 구원해내는 것이다.

크리스를 거래하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의 파티에서 크리스는 고립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로즈의 아빠가 친구들을 크리스에게 소개할 때 그들 각각은 크리스의 시점샷으로 보여진다. 이 때 극단적으로 짧은 커트가 불안정하게 연속되면서 크리스의 불안한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곧이어 크리스가 로건(백인 로건에게 몸을 빼앗긴 흑인 드레)을 몰래 촬영하려다가 스마트폰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모든 사운드가 정지되면서 시간이 멈춘 듯 보인다. 잠시 동안의 정적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는 현실의 소리가 아니라 전날 밤 크리스가 최면에 걸렸을 때 갇힌 침잠의 공간 속에서 들리던 사운드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사운드가 또렷이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로건의 측면에서 정면을 향해 이동한다. 그 순간 기괴할 정도로 온화하기만 하던 로건의 얼굴에는 또다른 얼굴, 곧 몸의 원래 주인인 드레가 나타난다. 그렇게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드레는 크리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가(Get Out)!'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겟 아웃'이라는 대사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크리스에게 이 곳에서 도망가라고 경고함과 동시에 자신의 몸을 차지한 백인 로건에게 나가라고 외치는 것이다. 로건이 크리스에게 외치며 달려드는 이 장면에서는 카메라 안으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빛 번짐이 일어난다.

그 순간 최면 속에서 들리던 비현실적인 사운드는 어느새 중단되고 현실 속의 사운드(digetic sound)가 다시 시작된다. 침잠의 공간에 갇혀 있던 드레가 빛과 소리와 더불어 현실로 복귀하는 순간이다. 최면과 뇌이식으로 주체성을 잃었던 드레가 그 결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이 순간을, 조명과 사운드가 협력하여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는 교통사고를 처리하던 백인 경찰로부터 명백히 의도적인 차별 대우를 받고서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크리스의 친구인 흑인 로드가 찾아간 경찰서의 형사들은(심지어 그들 자신도 유색인종이면서) 크리스가 백인 마을에서 실종됐다는 로드의 신고, 즉 흑인들의 간절한 도움 요청을 그저 웃음거리로만 여기며 무시한다. 이처럼 영화의 장면장면들은 법집행자들조차 흑인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미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백인들 때문에 위기에 빠진 크리스에게 도움이 된 존재는 공항경찰로 일하는 친구 로드였다. 만일 크리스에게 로드와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나 유능한 예술가라는 괜찮은 사회적 지위가 없었고 한다면, 과연 이 영화와 같은 해피엔딩이 가능할지는 사실 의문이다. 단언컨대 법은, 다른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부당한 위험에서 벗어날(Get Out) 수 있도록 차별없이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여야 한다. 유엔이 1965년에 채택한 ‘인종차별철폐협약’은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확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수십 년 전 이 협약에 가입하였고, 이후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로부터 관련 법을 제정하라는 내용의 권고를 받은 사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차별철폐를 위한 어떠한 법도 제정되어 있지 않다. 합리적 이유 없이 인종, 피부색, 출신국가, 출신민족,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언어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이 수 차례 입법 과정에 올랐으나 끝내 반대 의견에 부딪혀 아직까지도 차별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차별이라는 침잠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 함께 ‘겟 아웃’을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한, 진정으로 새로운 2021년 한 해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진 출처:감독 Jordan Peele 제공 Universal Pictures제작Blumhouse Productions, QC Entertainment<겟 아웃>(2017))

저작권자 ⓒ OBSW,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